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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기 든 박삼구, 아시아나 ‘금호’ 뗀다…올 매출 10조 달성 물거품

이소현 기자I 2019.04.15 16:48:49

타이어 이어 항공까지..그룹 재건의 꿈 무너져
M&A ‘대어’ 아시아나…항공업계 지각변동 예고

박삼구 전 아시아나그룹 회장(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이소현 기자]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백기 투항했다. 그룹 핵심 계열사인 아시아나항공(020560)을 매각하기로 했다. 직접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을 찾아 유동성 위기에 벼랑 끝으로 내몰린 아시아나항공 매각 의사를 전달했으며, 곧바로 매각 방안을 담은 수정 자구계획을 냈다.

박 전 회장은 수정 제출한 자구계획안에 항공 자회사인 저비용항공사(LCC) 에어부산(298690)과 에어서울 등도 ‘통매각’ 하는 방안을 담아 아시아나항공 몸값을 높이며, 금호 ‘상표권’도 협조하기로 해 매각 의지를 드러냈다.

금호아시아나그룹 관계자는 “아시아나항공의 미래 발전과 1만여명 임직원을 위해 내린 결정”이라고 밝혔다. 이로써 88서울올림픽을 겨냥해 1988년 대한항공에 이어 제2의 민간정기항공운송사업자로 출범한 아시아나항공은 31년 만에 ‘금호’를 떼고 새 주인을 찾아 나서게 됐다.

[이데일리 이동훈 기자]
◇타이어 이어 항공까지…무너진 그룹 재건의 꿈

금호아시아나그룹은 15일 금호산업(002990) 이사회 의결을 거쳐 아시아나항공을 매각키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현재 아시아나항공의 최대주주는 금호산업으로 전체 지분의 33.47%를 보유하고 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아시아나항공 매각을 위한 매각 주관사 선정,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등 적법한 매각절차를 진행할 예정이다.

올해 초 박 전 회장은 금호아시아나그룹의 매출 목표로 10조2500억원, 영업이익 5100억원을 제시했다. 특히 그룹 매출의 60%가량을 담당하는 아시아나항공은 유가가 안정세를 보이고 있고 사드(THAD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로 촉발된 한중간의 갈등도 해소되고 있어 경영목표 달성은 물론 그룹의 중추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아시아나항공 매각으로 박 전 회장의 올해 그룹 매출 10조 달성 계획은 물거품이 됐다. 앞서 그는 대주주로서 경영 악화에 책임을 지고 아시아나항공을 비롯해 그룹에서 모든 직함을 내려놔 사실상 은퇴했다.

박 전 회장의 그룹 재건의 꿈도 무너졌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박 전 회장이 ‘금호고속→금호산업→아시아나항공’으로 수직계열화해 지배하는 구조다. 매출 60%가량을 자치하는 아시아나항공 매각으로 그룹 사세가 쪼그라들게 됐다. 지난해 연간 매출 2조원 규모인 금호타이어 재인수에 실패하고 올해는 연간 매출 6조원 규모인 아시아나항공을 매각하게 되면서 중견기업 수준으로 사세가 축소될 전망이다. 대우건설과 CJ대한통운을 인수하며 한때 재계 7위까지 올랐지만 ‘승자의 저주’로 아시아나항공까지 잃게 된 셈이다. 남은 사업군은 금호고속, 금호산업, 금호리조트뿐이다.

◇사옥 팔며 부채비율 줄였지만 역부족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아시아나항공 지키기’는 눈물겨웠지만, 역부족이었다. 작년 금호아시아나그룹은 그룹 재무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금호아시아나그룹 사옥 매각, CJ대한통운 주식매각 및 아시아나IDT와 에어부산의 기업공개(IPO) 등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 그룹 전체 부채비율을 전년대비 30%포인트가량 줄이고 차입금 규모도 1조2000억원가량 축소했다.

지난달 아시아나항공 ‘한정’ 회계 사태로 드러난 유동성 위기는 매각까지 이어졌다. 아시아나항공은 당장 오는 25일 만기가 돌아오는 600억원 규모의 회사채를 상환해야 한다. 아시아나항공 총 차입금은 작년 말 기준 3조4400억원이며, 1년 안에 갚아야 할 단기차입금은 1조3200억원이다.

박 전 회장은 아시아나항공을 지키기 위해 마지막 승부수를 던졌다. 지난 10일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박 전 회장의 영구퇴진, 금호고속 지분에 담보 설정, 자회사 매각 등을 조건으로 5000억원 자금수혈을 요구했지만, 채권단은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기에는 미흡하다”며 하루 만에 거부했다.

아시아나항공 항공기(사진=연합뉴스)
◇M&A ‘대어’ 아시아나…항공업계 지각변동

아시아나항공이 ‘금호’에서 분리되는 수순이 되면서 인수합병(M&A) 시장의 대어로 떠올랐다. 경영권 프리미엄을 붙여 매각할 가능성이 커 전체 매각가격은 1조 이상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 시장에서는 SK, 한화, 애경그룹 등이 잠재적 인수 후보군으로 거론되고 있다. 인수전이 본격화되면 롯데, CJ, 신세계그룹도 복병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일단, 해당 기업들은 “사실무근”, “계획이 없다”며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재계는 매각 절차가 본격화하면 이들 기업 중 상당수가 인수전에 뛰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700%에 달하는 아시아나항공의 부채비율을 감당하면서 인수할 수 있는 곳은 자금력이 탄탄한 대기업만이 가능하다는 평가다.

SK그룹은 재계 3위의 막강한 자금력으로 가장 유력한 후보다. 지난해 7월부터 불거진 인수설에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지분 인수를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지만, 최근에는 묵묵부답으로 인수설을 부인하지 않았다. SK그룹은 최규남 전 제주항공 대표를 수펙스추구협의회 글로벌사업개발담당 부사장으로 영입했다는 것도 인수설의 배경이 됐다.

한화그룹도 유력한 후보다. 방위사업을 하는데다 국내 유일 항공엔진 제조 기업 한화에어로스페이스를 계열사로 두고 있어 항공운송사업과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국내 1위 LCC 제주항공을 보유한 애경그룹도 거론된다. 국내 2위 대형항공사를 인수하게 되면 그룹이 한 단계 더 도약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일각에서 자금력은 부족하지만, 전략적 투자자나 재무적 투자자들과 컨소시엄을 구성해서 인수전에 참여할 가능성을 제기한다. 그러나 항공업계는 제주항공이 보유한 기재는 보잉으로 에어버스 위주인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는 데 사업적으로는 비합리적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신세계그룹도 면세점 사업 등과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2017년 티웨이항공 인수를 시도한 적이 있으며, 최근 신규 면허를 받은 LCC 플라이강원에도 지분을 투자했다.

이 밖에도 롯데그룹은 물류, 유통, 면세업과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측면에서, 물류업계 강자인 CJ그룹도 항공운송으로 활로를 개척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이름이 거론된다.

특히 아시아나항공이 에어부산, 에어서울 등 자회사를 ‘통매각’하는 방침은 항공업계에 지각변동을 일으킬 것으로 전망된다. 에어부산은 국적 LCC 4위 규모로 부산 및 경남지역에서 기반이 튼튼하다. LCC업계 막내인 에어서울은 LCC 중 최다 일본노선을 운영하고 있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아시아나항공은 장거리, 에어부산과 에어서울은 중단거리에 집중하는 등 수익노선 배분으로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다”며 “유력한 대기업이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할 경우 국적 1위인 대한항공과 어깨를 견줄만한 회사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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