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하나 지키는 게 왜 이리 힘들까요"…426일 만에 굴뚝서 내려온 파인텍 노조

손의연 기자I 2019.01.11 17:38:25

11일 오후 파인텍 두 노조원 지상으로 내려와
홍 지회장 "노조 지키는 게 어려운 더러운 세상"
박 사무장 "감사…올곧게 나가도록 노력"

파인텍 노사 협상이 6차 교섭 끝에 극적으로 타결된 11일 파인텍 노동자인 홍기탁(오른쪽)·박준호씨가 서울 양천구 서울에너지공사 75m 높이 굴뚝에서 426일째 농성을 끝내고 내려와 소감을 밝힌 뒤 눈물을 흘리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손의연 기자] “위에서 많은 걸 느꼈습니다. 노동조합 하나 지키는 게 왜 이리 힘든지 참 모르겠습니다.”

홍기탁 전 파인텍노조 지회장이 굴뚝농성 426일째인 11일 서울 양천구 목동 서울열병합발전소 굴뚝에서 내려와 이같이 말했다. 홍 전 지회장과 박준호 사무장은 지난 2017년 11월 12일 굴뚝에 올라가 1념 넘게 농성을 벌인 끝에 11일 오후 4시 15분쯤 땅을 밟았다. 이날 오전 7시 20분 파인텍 노사가 극적으로 합의에 성공하면서 두 조합원은 지상으로 내려올 수 있었다.

두 사람이 계단으로 내려오는 과정을 지켜보던 스타플렉스(파인텍) 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행동과 시민들은 손뼉를 치고 환호성을 지르며 이들을 맞았다.

침대에 오른 두 조합원은 열병합발전소 정문에 모인 취재진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홍 전 지회장은 “위에서 박준호 동지와 많이 싸우기도 했지만 많은 걸 느꼈다. 긴 역사 속에서 지켜왔던 민주노조인데 그걸 지키는 게 힘든 더러운 세상이다”라며 중간중간 흐느끼며 말을 이어나갔다. 그는 이어 “청춘을 다 바쳤다, 민주노조 사수하자”고 구호를 외쳤다.

박 사무장은 “고맙다는 말씀부터 드린다. 위에 올라가 있다는 거 말고 밑에 있는 동지들에게 힘이 못 돼준 거 같아 미안하다”라며 “단식까지 해주시며 응원해주신 많은 분들께 이 자릴 빌려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 다시 현장으로 돌아가도 함께 해주신 동지들 마음을 받아 안고 올곧게 나가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새들도 살지 않는 그곳에서 땅으로 내려올 수 있게 됐다”

이날 오후 2시 30분 스타플렉스(파인텍) 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행동은 두 농성자의 구조 시간에 맞춰 ‘파인텍 교섭 보고 및 굴뚝농성 해단식’을 열었다.

동조 단식에 참여했던 박승렬 목사는 “이 자리에 참석한 여러분 모두 다 기뻐하리라고 생각한다. 새들도 살지 않는 그곳에서 426일째 버티고 있던 두 분이 오늘 땅으로 내려올 수 있게 됐다”며 “노사 간 깊은 갈등·분노·불신 이런 것들이 잠재워질 수 있을지 심각한 문제다. 양측이 평화롭고 온전한 발전을 이루도록 기도하겠다”고 말했다.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은 “조합원들이 환호의 마음보다 다행이라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을 것이다”며 “동지들이 엄청난 요구를 했던 게 아닌 걸 알 것이다. 합의서를 받아들고 손이 떨렸다. 이 1~2장의 종이가 결국 사람 목숨이었구나라고 확인했다”고 밝혔다.

박래군 인권재단사람 소장도 “헌법에 보장된 작은 권리를 위해 많은 사람이 애쓰고 노동해야 하는 게 서글프다”며 “이날 합의가 지켜질 수 있도록 함께 단식한 우리도 합의사항이 제대로 이행될 수 있도록 감시하며 재발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소회를 밝혔다.

굴뚝에서 내려온 두 조합원과 단식자들은 바로 병원으로 옮겨졌다.

◇2017년 11월부터 시작된 굴뚝농성 막 내려

홍 전 지회장과 박 사무장의 굴뚝농성은 차광호 파인텍 노조 지회장의 굴뚝농성에 이은 두 번째다. 스타플렉스는 2010년 스타케미칼(한국합섬)을 인수했다. 그러나 회사는 공장을 돌린 지 얼마 되지 않아 2013년 초 실적 부진으로 폐업한다며 정리해고를 단행했다.

차 지회장은 이에 대해 항의하며 2014년부터 2015년까지 408일간 경북 구미 공장 굴뚝에서 농성을 벌였다. 차 지회장의 농성이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자 스타플렉스는 자회사를 세워 노동자를 고용하기로 했다. 파인텍은 스타플렉스 자회사 스타케미칼로부터 노동자들이 권고사직을 받은 뒤 노동자들이 반발하자 스타플렉스가 새로 세운 법인이다. 당시 회사와 노조는 새 법인을 세워 노동자들의 고용을 보장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이후 진행된 단체협약 협상 과정에서 상여금 등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자 홍 전 지회장과 박 사무장은 지난 2017년 11월 12일 서울 양천구 목동 열병합발전소 굴뚝에 올랐다. 노조는 파인텍 공장 재가동과 남은 5명의 노조원을 스타플렉스에서 직접 고용해야 한다고 요구해왔다.

노사는 지난해 말부터 다섯 번에 걸쳐 교섭을 벌였지만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하지만 11일 10여 시간이 넘는 마라톤 교섭 끝에 합의를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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