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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안 나…하급자가 했다" 검찰서 혐의 전면부인한 양승태

이승현 기자I 2019.01.11 17:37:27

日 강제징용소송 개입 이어 법관 블랙리스트 조사
"범죄 혐의·책임 인정 안 해"…박병대·고영한과 동일 입장
檢, 물증·진술로 혐의 입증 자신해 구속영장 청구 무게
이르면 다음날 재소환 등 추가조사 방침

‘사법농단’ 의혹의 정점인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11일 오전 피의자 신분으로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노진환 기자)
[이데일리 이승현 기자] 양승태(71) 전 대법원장은 검찰 소환 전 대국민 입장표명에서 밝힌 대로 실제 조사에서도 재판거래 등 핵심 혐의를 전면 부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1일 검찰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청사 15층 1522호 조사실에서 이날 오전 9시 30분부터 8시간 가까이 양 전 원장에 대한 피의자 소환조사를 이어가고 있다. 100페이지가 넘는 질문지를 준비한 검찰은 핵심 물증과 관련자 진술을 제시하며 양 전 원장의 답변을 듣는 방식이다. 호칭은 ‘원장님’으로 했다.

첫번째 조사자인 특수1부 소속 박주성(41·사법연수원 32기) 부부장 검사는 오후 4시까지 양 전 원장을 상대로 일제 강제징용자 손해배상소송 개입 의혹에 대해 추궁했다. 이후 같은 부의 단성한(45·32기) 부부장 검사가 바통을 이어받아 법관 사찰 및 인사불이익 의혹에 대한 조사를 하고 있다. 양 전 원장은 틈틈이 조사실 내 소파에서 휴식을 취하고 점심으로는 도시락을 먹었다.

양 전 원장은 이날 검찰조사에 자신의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다. 양 전 원장은 개별적 질문에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거나 ‘하급자가 알아서 했다’ 등 취지로 답변한 것으로 전해졌다. 양 전 원장이 대동한 법무법인 로고스 소속의 최정숙(52·23기) 변호사 등은 진술에 조력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범죄 혐의나 책임을 인정하는 취지는 아니다”고 설명했다. 양 전 원장과 공모관계인 박병대(62)·고영한(64) 전 법원행정처장(대법관)도 앞선 검찰 조사에서 ‘하급자가 알아서 했다’ 등 취지로 자신의 책임을 부인하는 진술로 일관했다.

양 전 원장은 이미 혐의부인 입장을 명확히 했다. 그는 오전 9시쯤 검찰청사 도착 전 대법원 앞에서 ‘부당한 인사개입이나 재판개입이 없었다는 입장인가’라는 취재진 질문에 “그건 변함없는 사실이다”며 거듭 의혹을 부인했다. ‘검찰 수사에서 관련 자료나 증거가 나오는데 같은 입장을 고수하나’라는 질문에도 “누차 이야기했듯 그런 선입관을 갖지 말길 바란다”고 했다.

다만 양 전 원장은 검찰 질문에 답변을 아예 하지 않는 등 진술거부권은 행사하지 않고 있다. 검찰은 ‘양 전 원장의 지시가 있었다’는 취지의 진술을 한 전·현직 법관과의 대질신문은 계획하지 않고 있다.

검찰은 양 전 원장에 대해 40개가 넘는 범죄 혐의를 포착한 상태다. 구체적으로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손해배상소송 결과 뒤집기 시도 △비판적 성향 법관 사찰 및 인사불이익 △옛 통합진보당 의원 지위확인소송 개입 △헌법재판소 및 검찰 내부자료 유출 △3억원대 대법원 비자금 조성 등 의혹에 깊숙이 관여한 것으로 보고 있다.

양 전 원장이 조사 첫날 혐의를 완강히 부인함에 따라 다른 혐의를 인정할 가능성도 희박해 보인다. 그러나 검찰은 그가 징용소송 개입과 법관 인사불이익을 입증할 물증과 진술을 대거 확보했다며 혐의 입증을 자신하고 있다. 이에 따라 검찰이 두 전직 대법관처럼 양 전 원장에게도 증거인멸 우려 등 사유로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방안에 무게가 실린다.

검찰은 양 전 원장을 상대로 오후 8시까지 법관 인사불이익 의혹을 조사한 뒤 이후 피의자 신문조서 열람을 거쳐 자정 안에 귀가시킨다는 방침이다. 양 전 원장 측도 이에 동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오늘 조사를 마치고 이르면 다음날 재소환도 배제하지 않은 등 조사를 더 할 예정이다. 검찰 관계자는 “양 전 원장 소환조사 이후에도 하급자 재소환 등 필요한 조사를 할 예정”이라고 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11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법원 앞에서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출석하기 전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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