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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웅의 블토경]암호화폐시장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이정훈 기자I 2019.02.09 08:51:00


암호화폐시장이 침체를 겪고 있고 정부 규제의 불확실성이 여전한 가운데서도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하면서 토큰 이코노미를 접목시킨 다양한 블록체인 프로젝트들은 우후죽순 격으로 생겨나고 있습니다. 블록체인 생태계와 그 생태계가 작동하게 만드는 토큰 이코노미를 어떻게 이해해야할지 길잡이가 절실합니다. 이에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해외송금 프로젝트인 레밋(Remiit)을 이끌고 있는 정재웅 최고재무책임자(CFO) 겸 수석 토큰 이코노미스트가 들려주는 칼럼 ‘블(록체인)토(큰)경(제)’을 연재합니다. [편집자주]

[정재웅 레밋 CFO] 일반적으로 경제학에서는 개별 경제주체 - 가계와 기업 - 가 효용을 극대화하는 최적화 행동에 대해 논의하는 미시경제학(Microeconomics)과 국민소득, 저축율 등 집계변수를 통해 국가의 거시안정화정책에 대해 논의하는 거시경제학(Macroeconomics)가 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경제신문을 통해 접하는 주제는 거시경제학 관련 주제가 많지만, 실제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경제활동을 하면서 내리는 결정과 행동에는 미시경제학이 더 큰 영향을 미친다. 개인의 최적화 행동을 다루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는 점심식사 메뉴를 결정하며, 여름 휴가 장소를 결정하는데 있어 무엇이 효용을 극대화하는지 고민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금융경제학에는 시장미시구조 이론(Market Microstructure Theory)이라는 분야가 있다. 미시경제학이 개별 경제주체의 효용 극대화 의사결정을 다룬다면, 시장미시구조 이론은 금융시장에서 참여자들이 어떻게 행동하여 금융상품의 가격이 결정되는지 다룬다. 이 분야가 나오기 이전까지 금융시장에서 실제 금융상품의 가격이 어떻게 결정되는지는, 비록 주식의 가격을 결정하는 모형인 자본자산가격결정 모형과 옵션의 가격을 결정하는 블랙-숄즈-머튼 옵션가격결정 모형이 있었지만, 상당부분 불명확했다. 시장미시구조 이론이 시작되면서 비로소 시장에서 실제로 가격이 어떻게 결정되는지를 알 수 있게 되었다.

시장미시구조 이론의 시작은 알버트 카일(Albert Kyle)이 1985년에 이코노메트리카(Econometrica)에 게재한 논문이지만, 그 이전에 밀그롬과 스토키(Milgrom and Stokey)가 1982년에 경제 이론 저널(Journal of Economic Theory)에 게재한 논문을 살펴보아야 한다. ‘정보, 거래, 그리고 보편 지식(Information, Trade, and Common Knowledge)’ 이라는 제목의 이 논문에서 밀그롬과 스토키는 왜 시장에서 거래가 이루어지는지를 설명한다. 그들에 따르면 시장 참여자들이 서로 다른 정보와 기대를 갖고 있기 때문에 시장에서 거래가 발생한다. 예를 들어 A 라는 사람은 반도체 슈퍼 사이클이 꺼졌기에 삼성전자 주가가 하락할 것이라고 예상하기여 보유한 주식을 매도하려고 하는 반면, B라는 사람은 슈퍼 사이클이 꺼졌으므로 일시적 조정기를 거친 후 삼성전자가 다시 반도체 시장을 장악할 것이며, 따라서 삼성전자 주가가 상승할 것이라 예상하여 주식을 매수하려고 한다. 이 둘은 시장에 자신들이 적정하다고 생각하는 매도호가와 매수호가를 제출하여 거래하고, 이러한 가격은 이들이 지닌 정보를 시장에 전달한다. 즉 시장에서 거래는 서로 다른 정보와 기대 때문에 발생하며, 이 경우 가격(호가)은 이러한 정보가 시장에 드러나며 균형가격이 결정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만약 시장 참여자들이 모두 같은 기대를 갖고 있다면 거래는 발생하지 않고, 이 경우 우리는 재화나 서비스의 적정 가치가 무엇인지 판단할 수 없다. 가격을 통해 기대와 정보가 전달되며 시장에서 조정이 이루어지는데, 그 과정이 이루어지기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시장에서의 가격은 중요한 정보 전달자 역할을 한다.

밀그롬과 스토키의 이러한 논의에 기초하여 카일은 1985년 ‘연속 경매와 내부자 거래(Continuous Auction and Insider Trading)’ 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상술한 이코노메트리카에 발표했다. 이 논문에서 카일은 정보를 가진 내부거래자(Informed Trader)는 정보 - 이 경우 시장에서 결정되는 금융상품의 가격과 그 가격의 변동성 - 를 사전적으로 알고 있지만, 시장조성자(Market Maker)는 주문의 총량만 알고 있고, 개인 소액 투자자(Noise Trader)는 이러한 정보를 전혀 알지 못한다고 가정하고 주식시장에서 가격이 형성되는 메커니즘을 밝혔다. 카일에 따르면 시장에서 가격은 전적으로 정보를 가진 내부거래자에 의해 결정되며, 시장조성자나 개미들은 이에 수동적으로 따를 수밖에 없다. 즉 내부거래자는 시장에서 결정되는 가격과 변동성을 알고 있기에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가격을 결정할 수 있고, 이를 통해 개인 소액 투자자들로부터 이익을 탈취할 수 있다. 시장조성자는 주문의 총량만 알고 있기에 내부 거래자와 개인 소액 투자자를 구분하지 못하며, 개인 소액 투자자는 정보를 알지 못하기에 자신들의 이익을 탈취당할 수밖에 없다. 특히 이는 시장의 깊이(Market Depth, 시장의 규모)가 얕은 시장에서 더욱 확실하게 드러나는데, 정보를 가진 내부거래자가 자신의 주문을 통한 시장의 조작(Manipulation)을 행하기에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렇게 작은 시장은 주문의 규모를 통해 정보를 가진 내부거래자의 주문 흐름을 파악할 수 있지만, 보통 이렇게 규모가 작은 시장은 규제도 충분하지 않고, 시장의 가격 결정 메커니즘 자체도 명확하게 밝혀져 있지 않기 때문에 정보를 가진 내부거래자의 거래행위를 파악하기 힘들다. 비유컨대 컵에 담긴 물은 우리가 조금만 그 컵을 움직여도 심하게 출렁거리지만, 큰 물통에 든 물은 쉽게 출렁거리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현재 암호화폐 시장이 바로 카일이 언급한 저 메커니즘에서 시장의 깊이가 얕은 시장이다. 코인마켓캡에 의한 시가총액 100대 암호화폐의 하루 거래 총액이 아무리 높아도 하루 거래 총액이 2조 달러에 이르는 외환시장에 비교하면 작은 규모다. 하루 거래 총액이 2조 달러에 달하는 외환시장조차 조지 소로스를 비롯한 소수의 정보를 가진 내부거래자들에 의한 시장 조작이 가능한데, 예를 들어 1990년대 초반의 영국 파운드화에 대한 조지 소로스의 공격처럼, 하물며 이보다 작은 암호화폐 시장은 말할 것도 없다. 2017년 하반기에 제이미 다이먼 JP 모건 회장이 비트코인은 사기라고 공개적인 비판을 하여 비트코인 가격이 하락했을 때, 역으로 JP 모건 자체는 비트코인에 투자한 사실이 밝혀져 논란이 된 적이 있다. 사실 이건 전혀 논란이 될 문제가 아닌데, 정보가 비대칭이고, 시장의 깊이가 얕으며, 시장의 가격 결정 메커니즘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비트코인 시장이야말로 JP 모건 같은 시장의 거대 참여자가 자신의 뜻대로 조작하기 쉬운 시장이기 때문이다. 뒤집어 말하면, 이는 곧 암호화폐 시장에 뛰어든 개인투자자들 - 즉 정보가 부족하고 애써 얻은 정보를 분석하고 처리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소음투자자들 - 은 정보를 가진 투자자들의 먹잇감이 될 확률이 높다는 뜻이다.

물론 이는 시장 규모가 충분히 커지고, 정부의 법과 규제가 적용되어 시장이 투명해지면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이지만, 현재 암호화폐 시장은 규모가 외환시장을 비롯한 금융시장대비 작은 문제가 있다. 설상가상으로 정부와 국회는 아직까지 암호화폐 시장에 대한 제대로 된 법과 규제마저 만들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가장 불리한 처지에 있는 사람은 결국 소액 개인 투자자일 수밖에 없다.

소액 개인 투자자를 보호하고 암호화폐 시장이 제대로 기능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국회가 법을 정비하고 관련 규제를 명확하게 하여 시장의 질서를 바로잡아야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암호화폐 시장은 여전히 일확천금을 꿈꾸며 뛰어들었다가 돈을 잃고 망연자실한 사람과 사기 프로젝트만을 양산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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