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노사협력 130위 국가, 426일간의 고공농성

이정훈 기자I 2019.01.13 10:08:04
[이데일리 이정훈 기자] 지난해 <체공녀 강주룡>이라는 소설을 통해 소개되며 일약 대중들의 관심을 끌었던 강주룡. 평원고무공장에서 일하던 평범한 근로자였던 강주룡은 1931년 5월 공장측의 일방적인 임금 삭감 통보에 항의해 을밀대 지붕에 올랐다. 일본경찰에 8시간만에 연행되긴 했지만 그는 한국 노동운동사에 최초의 고공농성자로 기록돼 있다. 당시 강주룡은 “끝까지 임금 감하(=삭감)를 취소하지 않으면 나는 근로대중을 대표하여 죽음을 명예로 알 뿐”이라고 외쳤고, 자신은 비록 공장으로부터 해고 당했지만 동료 근로자들의 임금 삭감만은 막아냈다고 한다.

작년 8월15일 광복절 기념식에 참석했던 문재인 대통령이 경축사에서 강주룡을 또 한번 언급했다. 문 대통령은 그를 통해 당시 일제 치하에서도 꺾이지 않았던 한국인들의 기개를 높이 평가하고자 했으면서도 동시에 자신이 대통령 취임 이전부터 강조해온 노동현장의 아픔을 보듬고 노동자들의 노동권과 인권을 존중하겠다는 메시지를 국민들에게 다시 한번 던진 것으로 받아 들여졌다.

강주룡의 첫 고공농성 86년 뒤인 지난 2017년 두 명의 근로자는 회사측의 일방적인 공장 폐쇄와 정리해고를 막고자 서울 양천구 목동열병합발전소 굴뚝 위에 올랐다. 그리고 사측과 극적인 합의를 이끌어낸 지난 11일, 이들은 전세계 역사에 남을 426일이라는 최장의 고공농성 신기록을 세우고 굴뚝을 내려왔다.

이들은 한국합섬이라는 섬유가공업체 근로자였다. 2010년 재정난을 겪다가 스타플렉스라는 회사에 팔렸고 이 때부터 갈등이 시작됐다. 스타플렉스가 세운 자회사 스타케미칼은 1년 반 공장을 가동하다 경영난을 이유로 폐업을 선언했다. 고용 승계된 100여명이 정리해고됐다. 이에 항의한 노조측은 고용 보장을 외치며 경북 구미에 있는 공장 굴뚝에 올랐고 회사측은 별도법인인 파인텍을 세워 고용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하고 굴뚝을 내려오게 했다. 그러나 이후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노동자들은 또다시 발전소 굴뚝 위로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426일이라는 긴 시간을 지체했고 약속한 7월1일에 이들이 회사에 다시 출근할지 낙관할 순 없지만 일단 최악의 사태는 면했다는 건 천만다행한 일이다.

우리 기업들에서의 노사간 신뢰는 추락할대로 추락해있다. 세계경제포럼(WEF)이 내놓은 지난해 국가 경쟁력보고서를 보면 노사관계 척도를 나타내는 노사협력에서 한국은 조사대상 137개국 가운데 130위였다. 노사간 불신이 전세계 어떤 나라에서보다 크다는 얘기다.

이같은 불신을 쌓은 책임이 기업과 근로자 가운데 어느 쪽에 있는지 따지자는 게 아니다. 이런 불신을 현실로 인정하되 이를 해소하기 위한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얘기다. 이번 파인텍 사태처럼 시민사회단체와 종교단체 등이 자발적으로 나서 노사 양측을 중재하는 노력도 의미있다.

다만 보다 본질적이고 구조적인 해결책이 필요한 시점이 됐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를 중심으로 산업별, 업종별 하부 위원회를 설치하는 한편 사회적 대화기구를 통해 노·사·정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려는 노력이 절실한 때다. 개별 사업장 하나하나에 정부가 개입해선 안될 일이지만 이런 중재와 조정기구를 마련하는 일은 정부와 국회가 총대를 메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어떤 정부보다 노동자의 권리를 소중한 가치로 여기는 문재인 정부에게 파인텍 사태가 몸에 좋은 쓴 약이 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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