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관에서] ‘이상하고 또 이상한’ 한국당의 자폭정치

김성곤 기자I 2019.02.18 06:00:00

민주당과 격차 줄인 한국당, 전대 앞두고 자충수 연발에 악재 속출
김정은·트럼프 2차 정상회담 음모론 ‘한국 정치사 최고의 코미디’
‘5.18 폭동’ 망언, 보수 스펙트럼 확장 아닌 강경 태극기보수 선택
황교안 대표 체제의 후폭풍…전국정당 포기와 지역당 체제 고착화

지난 14일 오후 대전 한밭운동장 다목적체육관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3차 전당대회 충청ㆍ호남권 합동연설회에서 당 대표 후보로 나선 황교안(왼쪽부터), 오세훈, 김진태 후보들이 당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김성곤 기자] ‘목불인견(目不忍見) 자유한국당’

차마 눈뜨고는 볼 수 없는 꼴불견입니다.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에서 자충수 연발에 악재가 속출하고 있습니다. 잠시 민주당과의 지지율 격차를 줄였지만 모든 게 물거품입니다. 국정농단·탄핵·선거참패로 이어졌던 기나긴 암흑기에서 벗어날 것이라는 희망은 잠시뿐이었습니다. ‘도로아미타불’입니다. 한국당은 퇴행적 역사인식 속에서 ‘극우’로 내달리고 있습니다. 이제 또다른 암흑시대로의 진입을 예고할 뿐입니다.

자업자득입니다. 한반도 정세를 바라보는 눈은 지방선거 참패에서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했습니다. 북미정상회담 날짜가 문재인 대통령의 요청이라는 음모론에는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국현대사 인식 수준은 ‘퇴행’ 그 자체입니다. 김진태·이종명·김순례 등 한국당 소속 일부 의원들의 ‘5.18 망언’에 모두가 말을 잃었습니다. 만일 광주의 희생이 없었다면 오늘날 우리사회는 아직도 군부독재를 경험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촛불민심 아랑곳없이 ‘대선무효’…품격 잃은 한국당의 文정부 비판

정당의 존재 이유는 ‘집권’입니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특성을 갖는 한국정치 구조에서 야당이 현직 대통령을 무자비하게 비판하는 건 ‘오래된 습관’입니다. 역대 대선에서 패배한 야당이 현직 대통령을 뒤흔드는 건 이 때문입니다.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작동해야 한다는 명분도 뒷받침됩니다. 민주당도 야당 시절 비슷했습니다. 탄핵 이후 극심한 슬럼프에 시달렸던 한국당이 공세가 최근 거칠어졌습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내년 총선에서 교두보를 마련하지 못하면 차기 대선도 필패입니다. 김태우 → 신재민 → 손혜원 → 김경수로 이어지는 여권발 악재 속에서 한국당은 마구 칼을 휘둘렀습니다. 급기야는 촛불민심에도 아랑곳없이 “19대 대선무효”라고 외쳤습니다. 실현 불가능합니다. 그야말로 정치적 공세입니다. ‘대선불복’의 역풍이 불 수 있습니다.

야당의 비판에도 품격과 금도는 필요합니다. 비아냥과 조롱에 기댄 네거티브 효과는 제한적입니다. 과거까지 포함할 때 한국당은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정부를 제외하고는 단 한 번도 권력을 잃은 적이 없습니다. 뒤집으면 집권 경험이 가장 풍부한 정당입니다. ‘무조건적인 발목잡기’보다는 ‘대안을 갖춘 비판’을 해야 합니다. 상황은 정반대입니다. 한국당의 대통령 비판은 낡은 인식에 기대고 있습니다. 두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주사파 정권이 김정은에게 나라를 통째로 넘기고 있다. 경제도 망치고 있다.” 물론 한국당의 주장에 열렬히 환호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전반적인 국민적 공감대는 부족합니다. 이는 50% 안팎의 대통령 지지율과 여전히 민주당 절반 수준에 불과한 한국당의 지지율로 증명됩니다.

◇이명박·박근혜정부 10년은 태평성대?…‘기·승·전·최저임금’ 비판 합당한가?

한국당은 답답해 미칠 지경일 것입니다. ‘문재인 비판’은 왜 힘을 얻지 못할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정치는 절대평가가 아닌 상대평가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집권했던 3공화국과 유신 시절을 누군가는 ‘가난을 벗어났던 고도성장기’로, 또다른 누군가는 ‘민주주의와 인권을 말살한 암흑기’로 규정합니다. 다시 말해 “나는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는 영화제목처럼 국민들은 이명박·박근혜 보수정부 10년을 아직 상세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보수정부 10년은 현 정부보다 모든 게 월등했던 태평성태였을까요? “예스”라고 말하기에는 입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대기업 위주 성장전략의 산물인 ‘낙수효과’가 대한민국 경제를 업그레이드시켰는지 의문입니다. ‘친(親)기업 반(反)노동’으로 집약되는 국정운영이 대기업→중견·중소기업→소상공인·자영업자→비정규직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이루며 풍요를 구가한 시기도 아니었습니다. MB정부의 4대강사업은 ‘삽질경제’라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박근혜정부의 창조경제는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비아냥에 시달렸습니다. 남북관계도 비슷했습니다. 진보정부에서 주춧돌을 놓았던 ‘한반도 평화’는 날이 갈수록 후퇴했습니다. 보수정부 시절에도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은 끊임없이 고도화됐습니다. 오히려 금강산관광·개성공단은 문을 닫았고 정상회담도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MB정부 대북정책인 ‘비핵·개방·3000구상’은 현실과 거리가 먼 일방적인 주장이었습니다. ‘통일대박’을 외친 박근혜정부도 ‘북한붕괴론’이라는 난망한 정세 인식을 지우지 못했습니다.

현 정부의 한계도 뚜렷합니다. 다만 대북정책은 기대 이상입니다. 선물은 한반도 평화입니다. 이제 아무도 ‘전쟁’을 걱정하지 않습니다. 참 험난한 길이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예측 불가능한 지도자인 트럼프와 김정은의 만남을 이끌었습니다. 두 사람은 이제 하차할 수 없는 평화열차에 올라탔습니다. 경제는 아직 물음표입니다. 정권 출범 이후 부동산은 요동쳤습니다. 일자리 정부를 표방했지만 고용·소득지표는 하락을 거듭했습니다. 현 정부 최대 아킬레스건입니다. 그러나 모든 게 최저임금 때문일까요? ‘기·승·전·최저임금’ 프레임은 다소 과격합니다. 한국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들은 한둘이 아닙니다. 인구구조, 구조조정, 온라인쇼핑, 가계부채, 기준금리, 사드 경제보복, 미중 무역분쟁, 글로벌 경기침체 등 대내외적 변수가 중층적으로 작용합니다. 게다가 한국경제에는 언제부터인가 걸핏하면 “IMF 때보다 더 힘들다”는 초강력 ‘경제위기’ 프레임이 작동하고 있습니다. 부동산 불평등 구조와 양극화 심화는 한국사회의 안정성을 뒤흔드는 뇌관입니다. 그동안 백약이 무효였습니다. 어쩔 수 없이 가보지 않았던 길을 모색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몰락의 길 가속화 한국당 전당대회…어떤 결과 나와도 ‘전국정당화 난망’

성공 여부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이르면 상반기, 늦어도 하반기에는 결과가 나올 것입니다. 현 정부가 성공하면 한국당으로서는 최악입니다. 반대로 실패하면 내년 총선에서 반사이익을 얻어서 정권교체의 희망을 부풀릴 수 있을까요? 대단히 어렵습니다. 구조적으로 거의 불가능합니다. 한국당의 최근 행보는 ‘안습’ 그 자체입니다. 전략과 전술이 부재한 상황에서 강경 태극기부대만을 열광시키는 정치행보입니다. 득점 없이 실점의 연속입니다. 야구로 치면 연속 포볼에 폭투와 에러가 되풀이되는 상황입니다. 차라리 전신 정당인 새누리당, 한나라당, 신한국당, 심지어 3당합당의 산물인 민자당이 더 나아보일 지경입니다. 2.27 전당대회 과정에서 모든 게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극우적인 주장이 여과없이 흘러나옵니다. 대중적 지지를 바탕으로 집권을 꿈꾸는 제1야당 한국당과 ‘초미니 이념정당’인 대한애국당과의 차이점은 이제 사라졌습니다.

한국당 전대의 한계는 분명합니다. 어떤 결과가 나와도 계륵입니다. 표면적으로는 황교안·오세훈·김진태 3파전입니다. 다만 △원내대표 경선 결과 △책임당원 70%·여론조사 30% 대표 선출방식 △태극기부대의 책임당원 대거 입당 △2.27 전당대회 일정 고수 △절반 이상의 영남당원 구조를 고려할 때 황교안의 승리는 기정사실입니다. 한때 ‘배박’ 논란에 시달렸지만 대세에는 지장이 없습니다. 다만 태생적으로 탄핵의 꼬리표를 뗄 수 없는 황교안 체제의 한국당은 이념적·계층적·지역적 확장성이 불가능합니다. 전국정당화가 불가능해지고 지역당 체제가 고착화될 수 있습니다. 보수와 영남의 지지가 강해질수록 중도와 수도권으로의 확장성이 반비례할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박근혜 극복’을 외친 오세훈의 역전승은 주객관적으로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태극기부대의 ‘아이돌’ 김진태의 승리는 당 해체와 보수재편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카드입니다.

◇5.18망언 수습 불가에 북미회담 無대책…황교안 최고치는 ‘어게인 이회창’

보수는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40% 정도의 지지를 얻었습니다. 17대 총선 탄핵역풍과 20대 총선 공천파동이 대표적입니다. 탄핵과 보수분열로 최악이었던 19대 대선에서 홍준표·유승민의 득표율 합계는 30%를 넘었습니다. 지난해 6.13 지방선거에서는 더 추락했습니다. 전국 17개 광역단체장 중 대구시장과 경북지사 단 2곳만을 건졌습니다. 현 시점에서 볼 때 황교안 체제 한국당의 최대치는 ‘어게인 이회창’입니다. 황교안 체제의 등장이 갖는 한계를 고려할 때 차기 총선과 대선 패배를 잉태한 구조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과거 참여정부 시절 고건 전 국무총리나 지난 대선 과정에서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처럼 중도낙마할 가능성도 없지 않습니다. 향후 박근혜전 대통령의 보다 분명한 옥중 메시지가 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역설적으로 민주당은 그야말로 “땡큐”을 외칠 것입니다. 그런데 웃을 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한국당의 5.18 망언 파동은 수습불가입니다. 유일한 해결책은 문제의원 3명에 대한 제명인데 불가능합니다. 광주의 피로 쌓아올린 오늘날의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정치인을 배제하지 않고 국민적 지지를 얻겠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요? 태극기부대의 지지를 얻기 위한 것이라면 할 말 없습니다. 다만 TK민심을 위한 것이라면 이는 대구시민과 경북도민에 대한 모독입니다. 더 큰 문제는 2차 북미정상회담 이후의 세계사적 대격변입니다. 전망은 엇갈리지만 북미정상 모두 웃을 가능성이 큽니다. 1차 회담 때보다 보다 진전된 결과를 기대하지 않았다면 트럼프와 김정은이 마주 앉아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한반도의 지각변동과 세계사적 쓰나미는 이제 곧 시작입니다.

‘5.18에 북한군이 개입했다’는 가짜뉴스는 전두환도 부정하고 있습니다. 한국당은 철지난 색깔론과 절연하지 못하고 한반도 대격변에는 눈을 감고 있습니다. 참 이상하고 또 이상한 자폭정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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