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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미쳤던 열두살 소년, 세계영화의 거장 되다

박미애 기자I 2019.05.27 00:10:00
봉준호 감독과 배우 송강호가 영화 ‘기생충’으로 25일(현지시간) 프랑스 칸에서 열린 제72회 칸 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은 뒤 상패를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칸=이데일리 스타in 박미애 기자]소년은 소심하고 어리숙했지만 영화에 관해선 뜨겁고 진지했다. 소년은 친구들과 뛰어노는 것보다 혼자서 영화를 보는 것이 훨씬 더 좋았다. 소년은 열두 살이 됐을 때에 감독이 되기로 했다. 그로부터 40여년 뒤, 그 소년은 뤼미에르 극장에서 자신의 이름을 호명될 줄 예상이나 했을까.

“열두 살의 나이에 감독이 되기로 마음먹은 영화광에게, 이 트로피를 만지게 될 날이 올 줄은 상상도 못했다.”

봉준호 감독이 한국영화 사상 처음으로 세계 3대 영화제, 그 중에서도 으뜸으로 꼽히는 칸국제영화제 최고의 영예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봉준호 감독은 25일(현지시간) 프랑스 남부도시 칸에서 열린 제72회 칸국제영화제 시상식에서 영화 ‘기생충’으로 황금종려상 트로피를 품에 안았다. 2년전 칸에 초청을 받아서 왔는데 넷플릭스 논란으로 영화제의 푸대접을 받았다. 2년만에 황금종려상으로 완벽하게 설욕했다.

봉준호 감독은 “올해가 한국영화 탄생 100주년인데 칸국제영화제가 한국영화계에 의미 있는 큰 선물을 준 것 같다”며 “황금종려상을 받은 것이 놀랍고 실감이 안 난다”고 기뻐하면서 얼떨떨해했다.

봉준호 감독은 ‘괴물’(2006) ‘도쿄!’(2008) ‘마더’(2009) ‘옥자’(2017) ‘기생충’(2019)으로 다섯 번 만에, ‘옥자’ ‘기생충’으로 경쟁부문에 진출한지 두 번만에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한국영화는 2002년 ‘취화선’(감독 임권택)의 감독상을 시작으로 2004년 ‘올드보이’(감독 박찬욱) 심사위원대상, 2007년 ‘밀양’(감독 이창동) 여우주연상, 2009년 ‘박쥐’(감독 박찬욱) 심사위원상, 2010년 ‘시’(감독 이창동) 각본상 등 본상을 수상했다. 황금종려상은 이번이 처음이다. 올해가 한국영화 탄생 100주년을 맞은 해여서 의미를 더한다. 이로써 한국영화는 세계 3대 영화제 가운데 칸국제영화제와 베니스국제영화제, 2곳의 최고상을 획득했다.

‘기생충’은 봉준호 감독의 7번째 장편영화다. ‘기생충’은 반지하에 사는 빈민층 가족과 고급주택에 사는 부유층 가족 사이에 벌어지는 사건을 그린다. 영화는 극과 극의 삶의 조건을 가진 두 계층이 맞닥뜨리는 순간들을 포착한다. 봉준호 감독은 전작에서 사회와 그것을 움직이는 시스템에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는데 ‘기생충’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기생충’은 한국을 배경으로 한국가족의 이야기를 그리지만 이들을 통해서 다루는 계급문제는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기생충’은 두 가족을 통해 자본주의 사회에서 심화되는 빈부격차와 계급갈등, 개인주의, 공동체 붕괴 등의 문제를 짚는다.

전혜정 런던아시아영화제 집행위원장은 “빈부격차와 양극화 현상은 한국만의 상황이 아닌 전 세계에서 공통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구조나 세트는 한국적이지만 메시지는 보편적”이라며 “글로벌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이야기에 해외 평단과 언론의 호감을 얻은 것 같다”고 분석했다.

예측할 수 없는 이야기 전개와 장르의 변주는 영화적 재미를 갖췄다. 윤성은 영화평론가는 “봉준호 감독이 그간의 영화를 통해서 증명을 했듯이 ‘기생충’ 역시 예술성과 대중성의 균형이 잘 맞춰진 영화”라며 “한국 관객뿐 아니라 전 세계 관객들에게 즐거운 영화적 경험과 메시지를 폭넓게 어필할 수 있는 작품”이라고 평했다.

봉준호 감독이 켄 로치·테런스 맬릭·페드로 알모도바로·다르덴 형제·쿠엔틴 타란티노 등 세계적인 거장들의 작품과 경쟁해 결실을 이룬 것도 눈여겨볼 만하다. 윤 평론가는 “세계적 거장들이 자신들의 전작을 넘어서지 못하 반면 봉준호 감독은 ‘기생충’을 통해서 그가 정점에 있고 앞으로도 걸작들을 만들어낼 수 있음을 증명했다“며 ”송강호의 말처럼 봉준호 감독은 계속 진화할 것이다”고 언급했다.

봉준호 감독은 1969년 출생으로 1993년 단편 ‘백색인’ 1994년 단편 ‘지리멸렬’ 등을 연출했다. 2000년 첫 장편영화 ‘플란다스의 개’로 홍콩국제영화제 비평가상을 2003년 ‘살인의 추억’으로 토리노영화제각본상, 도쿄영화제 아시아영화상, 산세바스티안영화제 신인감독상 등을 받으며 국내뿐 아니라 국제 무대에서 주목을 받았다. 2003년 ‘괴물’은 1091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상업적으로도 큰 성취를 이뤘다. 봉준호 감독은 2009년 ‘마더’ 이후 글로벌 무대로 옮겼다. 그는 2013년 ‘설국열차’로 할리우드에 진출했으며 2017년 넷플릭스의 투자를 받은 ‘옥자’로 글로벌 행보를 이어갔다. ‘기생충’은 봉준호 감독이 10년 만에 국내로 복귀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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