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칼럼] 40대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왜 안 되는데

오현주 기자I 2019.02.18 00:12:00
[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50년이다. 1969년 10월 하순이었으니 정확히는 49년 4개월쯤 전이다. 급한 대로 경복궁, 지금의 국립민속박물관에 간판을 걸었다. ‘국립현대미술관’이라 했다. 정녕 현대미술과는 어울리지 않은 조화라 하겠으나 이상한 외형 따윈 무시해버릴 절절한 목표가 있었다. 집도 절도 없이 흩어진 한국 근·현대 미술품을 체계적으로 모으고, 세계 어디 내놔도 꿀리지 않을 현대미술의 구심점을 만들어보자는. 하지만 궁을 전전하는 처지는 한동안 계속됐다. 1973년 이번엔 덕수궁으로 옮겨가 어정쩡한 정체성을 이어갔으니.

그러다가 드디어 내 집을 장만했다. 1986년 완공한 과천관. 그제야 그럴듯한 모양새가 됐다. 역량도 규모도 ‘국내 최대’란 타이틀에 걸맞아갔다. 이후론 승승장구. 2013년 11월 개관한 서울관은 과천과의 정서적 거리감까지 줄여내며 현대미술을 향한 퍼즐을 맞춰나갔다. 지난해 말에는 과천·덕수궁·서울관에 이어 네 번째 분관까지 열었다. ‘보이는 수장고’를 내세운 청주관이다. 50주년 프로젝트를 염두에 둔 듯 지나치게 서둔 감이 없진 않지만, 문 닫은 옛 담배공장을 거대한 전시공간으로 만들 만큼 여유도 생겼다.

눈물 나는 여정이 아닌가. 셋방살이 신세가 어엿한 내 집을 네 채나 마련했으니. 어깨에 힘이 들어갈 만하다. 그런데 매번 그때만 되면 나타나 속을 썩이는 변수가 하나 있으니, ‘관장’이다.

지난주 결국 이용우(67) 전 광주비엔날레재단 대표가 의견서를 냈다. 이 전 대표는 최근 임명된 윤범모(68) 관장과 더불어 국립현대미술관장직에 응모해 최종 후보자 3인에 올랐던 인물. 문화체육관광부가 관장 임용을 위해 진행한 고위공무원 역량평가에서 홀로 통과했더랬다. 하지만 결과는 탈락. 떨어진 두 사람으로 다시 치른 초유의 ‘역량평가 재시험’으로 인해 되레 고배를 마신 거다. 의견서에서 그는 “국립현대미술관장 임명절차가 이번에도 예상대로 상처투성이”라며 “국립현대미술관이 700억원이나 쓰면서 글로벌 시각문화현장에서 무명 미술관으로 존재하는 이유를 깨우쳐야 할 때가 온 것 같다”고 개탄했다.

그런데 이 그림, 어디서 봤던 것 아닌가. 2015년 지난 관장의 임용을 앞두고도 비슷한 장면이 연출됐었다. 당시 최종 후보에 올랐던 최효준 전 서울시립미술관장은 긴급회견을 열고 “문체부의 한 공무원이 자진사퇴를 종용했다”고 터트려 파문을 던졌더랬다. 실제 문체부는 관장직 공모과정에서 최 전 관장 등에게 ‘부적격’을 통보한 뒤 재공모를 실시했고 결국 공석 1년을 넘겨 바르토메우 마리 전 관장을 임명했던 거다.

한 해 동안 국내서 여는 미술전은 7790회(2017년 기준)에 달한다. 결코 간단치 않다. 한 주에 평균 150개가 어디에선가 열리고 있단 얘기니까. 한 번이라도 전시장에 들른 관람객은 2040만명이 넘는다. 이뿐인가. 전시공간은 계속 늘고 있다. 김달진미술연구소가 지난 연말 조사·발표한 ‘2018 신규전시공간’은 147개. 2015년 103개, 2016년 130개, 2017년 139개로 지속적으로 늘어가는 통계까지 붙여냈다. 수요·공급의 균형은 차치하더라도 성장세라 할 만한 거다.

이 큰 그림을 내다보고는 있는 건가. 국내 최대 공공미술기관의 수장을 가리는 공모에 미술관을 어찌 운영하겠다는 계획서 한 번 공개한 적 없으니. 이번에는 그나마 공석 1개월로 마무리했으니 다행이다 할 건가. 역량평가를 두 차례나 치렀으니 대단했다 할 건가. ‘누가 가장 적합한가’를 살핀 건 맞나. ‘누가 덜 두들겨 맞을까’를 고민한 건 아니고.

임용의 잣대가 예술인지 행정인지. 예술적 역량과 전문성·독립성을 따진다면 40대 관장은 왜 안 되고 외국인을 또 앉힌들 무슨 상관인가. 아예 행정가로 못 박을 거면 평생 미술인 경력이 왜 필요한 거고, 굳이 그들을 관리자로 앉혀 만신창이로 때려댈 이유가 있는 건가.

참 지겨운 국립현대미술관장 논란이다. 임명권자는 이 난리통을 기어이 다시 보고 싶었던 건지. 세상에서 가장 감동적인 작품을 걸어야 할 미술관인데. ‘그로테스크한 초현실주의’가 내려올 줄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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