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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의 英… 총리 축출설·브렉시트 재투표 등 혼란 지속

방성훈 기자I 2019.03.26 00:00:00

英정부 관료 11명, 메이 사퇴 '쿠데타' 모의 논란
유력 후임자들 "선장 바꿀 때 아냐" 진화해 일단락
反브렉시트 100만명 거리로…“투표 다시하자"
메이 정면돌파할 듯…합의 나올때까지 의회 표결

영국 더선의 1면 표지. (사진=더선)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의 거취가 바람 앞 등불이다.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를 앞두고 정치권과 국민들 사이에서 메이 총리가 당장 물러나야 한다는 주장과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의견이 맞서고 있다.

EU 잔류를 원하는 100만여명이 국민투표를 다시 해야 한다며 시위를 벌이는가 하면, 브렉시트에 반대한다는 국민 청원은 530만건을 넘어섰다. 내각 관료들 중 일부가 테리사 메이 총리를 사퇴시키기 위한 불신임을 계획하고 있다는 소식까지 전해졌다.

그러나 차기 총리로 거론된 각료들은 “메이 총리를 지지한다”, “배의 선장을 바꿀 때가 아니다”라며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메이 총리의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좀처럼 잦아들지 않고 있다. 집권 보수당 내부에서조차 메이 총리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있다. 브렉시트를 둘러싼 논란이 매일 급변하는 상황에서 영국 의회가 어떤 결과를 도출해낼 것인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폴리티코는 24일(현지시간) “영국이 메이 총리를 제거하려는 겜블(도박)을 시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英정부 ‘총리 축출’ 논란…후임자 진화로 일단락

영국 더선데이타임스와 데일리메일 등은 23일 “이젠 (메이 총리가 물러날) 때가 됐다”면서 “영국 내각 각료들이 전화통화로 메이 총리를 자리에서 끌어내리기 위한 논의를 가졌다”고 보도했다. 더 선데이타임스는 총 11명의 각료들로부터 메이 총리 사퇴 추진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신문들은 메이 총리가 축출되면 올해 하반기 전당대회 전까지는 ‘관리형 지도자’가 자리를 대신할 것이라며, 데이비드 리딩턴 국무조정실장을 유력 후임자로 꼽았다. 브렉시트 찬성파인 마이클 고브 환경장관과 제러미 헌트 외무장관도 후임자 후보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선데이타임스의 팀 시프먼 정치 에디터는 “끝이 가깝다. 그녀(메이 총리)는 10일 안에 떠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른 영국 언론들도 일제히 관련 소식을 전했다. BBC방송의 로라 퀸스버 정치부 에디터는 “심각한 책략”이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반면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파이낸셜타임스 등은 메이 총리에 대한 사퇴 압박이 여전히 크지만 현실적으로는 총리 교체는 큰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메이 총리 후임자로 거론된 인사들은 줄줄이 총리 교체에 반대한다는 뜻을 내비쳐 ‘쿠데타’ 논란은 일단락됐다.

리딩턴 실장은 “나는 메이 총리를 100% 지지한다. 그는 총리직을 훌륭하게(fantastic) 해내고 있다”고 강조했다. 메이 총리의 오른팔로 사실상 부총리 역할을 맡고 있는 그는 EU 잔류파다.

메이 총리의 왼팔 격인 고브 장관도 “냉정하게 생각해야 한다. 지금은 배의 선장을 바꿀 때가 아니다. 올바른 방향으로 (배가) 나아갈 수 있도록 힘을 모아야 한다”며 총리 교체설을 일축했다.

필립 해먼드 재무장관은 스카이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것은 총리에 관한 것이 아니다. 총리를 교체하거나 집권당을 바꾸는 것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전 보수당 대표였던 이언 던컨 스미스도 BBC에 “일부 내각 관료들이 메이 총리에게 보여준 불충은 끔찍한 일”이라고 비판했다.

◇反브렉시트 100만명 거리로 “투표 다시하자…국민 뜻에 맡겨라”

이날 영국 수도 런던에서는 100만명이 거리에 나서 브렉시트 반대 시위를 벌였다. 시위 참가자들은 EU 깃발과 ‘국민에게 맡겨라’, ‘브렉시트를 멈춰라’, ‘국민투표를 다시 하라’ 등의 내용이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도심을 행진했다. 일부 시위자들은 최근 “테리사, 당신은 국민 편이 아니다”라고 외쳤다. 메이 총리가 “나는 국민 편이다”라고 한 발언에 대한 반박이다.

톰 왓슨 노동당 부대표, 빈스 케이블 자유민주당 대표, 니콜라 스터전 스코틀랜드 자치정부 수반 등 야권 정치인들도 대거 시위에 참여했다.

왓슨 부대표는 “메이 총리는 브렉시트를 통제할 능력을 잃었고 국가를 혼란에 빠뜨렸다”며 “제2국민투표를 통해 결정하는 것을 수용해야 브렉시트 합의안에 투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시위는 최근 100년 간 가장 큰 규모였던 지난 2003년 이라크전 중단 시위와 맞먹는 규모라고 영국 언론들은 전했다. 브렉시트에 반대한다는 국민 청원도 현재 530만건을 넘어서는 등 하루 평균 100만건 이상 늘어나고 있다.

영국의 괴짜 억만장자이자 민간우주비행업체 버진그룹을 이끄는 리처드 브랜슨 회장은 22일 회사 블로그를 통해 “영국은 여전히 노딜 브렉시트 재앙을 맞닥뜨릴 위험에 가까이 있다”면서 제2국민투표를 지지했다. 그는 “국민의 뜻은 진화한다. 언제든 변할 수 있다. 국민의 마음이 바뀌었다고 느끼는 건 나뿐 만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해먼드 장관도 “의회에서 과반 이상이 제2국민투표를 지지할 것인지 확실하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반대할 것이다. 그러나 다른 제안들과 함께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사진=AFP)
◇메이 정면돌파할 듯…합의 나올때까지 의회 표결

혼란이 가중되자 메이 총리는 다음 날인 24일 각료들과 보수당 중진 의원들을 만나 브렉시트 합의안 재표결시 충분한 지지를 얻을 수 있을 것인지 논의했다.

이에 로이터통신 및 텔레그래프 등은 메이 총리가 의회가 주도권을 갖도록 하는 ‘의향 투표(indicative vote)’를 실시할 것으로 전망했다. 가능한 모든 옵션을 테이블 위에 올린 뒤 과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브렉시트 방안을 찾을 때까지 의회가 주도권을 갖고 수 차례 투표를 실시하는 방식이다.

BBC는 △브렉시트를 취소하고 원점으로 되돌리는 방안 △제2국민투표 △합의안 수용 및 EU 관세동맹 잔류 △합의안 수용 및 EU관세동맹·단일시장 잔류 △캐다다 방식의 자유무역협정(FTA) △노딜 브렉시트 등이 표결에 부쳐질 것으로 관측했다. 이미 두 차례 부결된 합의안이 재상정되더라도 의회가 이를 통과시킬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다.

영국 하원이 브렉시트 합의안을 받아들일 것인지, 또 유럽의회 선거에 참여할 것인지를 결정하면 브렉시트는 4월12일, 또는 5월22일까지 연기된다. 브렉시트 반대 여론이 거세진 만큼 노딜보다는 유럽의회 선거 참여 선언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이 경우 브렉시트를 장기간 연기할 수 있게 되며, 제2국민투표 등을 통해 EU 탈퇴가 아예 취소될 수 있다는 예측이 나온다.

로이터통신은 “브렉시트는 이미 메이 총리의 손아귀에서 벗어났다. 메이 총리가 브렉시트 합의에 대한 지지를 높이기 위해 애쓰고 있는데, 의회는 향후 브렉시트를 장악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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