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훈의 암호화폐 읽기]<31>金처럼 안전자산? 주식처럼 위험자산?

이정훈 기자I 2018.04.21 07:25:25

비트코인, 법정화폐 불신에서 출발…불확실성에 반응
키프로스 사태 두달만에 350%↑…北위협에도 최고치
안전자산 투자와 성격 달라…주식처럼 투자위험 상존
최근 변동성 확대에 증시와 동행…안전한 투자가 우선

비트코인을 비롯한 주요 위험/안전자산의 기간별 변동성 추이 (그래픽=포브스)


[이데일리 이정훈 기자] 앞서 암호화폐가 아직은 화폐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고 얘기했고 그로 인해 많은 국가들이 암호화폐를 화폐라기보다는 하나의 (투자)자산으로 인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대목에서 궁금해지는 게 암호화폐라는 자산이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을까 하는 점입니다. 한동안 암호화폐는 금(金)과 같은 안전자산인양 취급 받았다가 최근 들어서는 주식과 같은 위험자산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직 화폐로 자리잡지 못했지만 화폐로서의 역할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암호화폐를 기축통화인 달러의 대체재 또는 일종의 안전자산으로 받아 들여지는 경향이 있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이 때문에 달러화 가치가 흔들리거나 정치적 불확실성이 커지고 글로벌 경기가 침체를 겪거나 금융위기가 생길 때마다 그 가치가 올라가는 일이 흔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알다시피 비트코인은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탄생했고 2013년 키프로스에서 외환위기가 터졌을 때 은행들이 문을 닫자 예금을 찾지 못한 자산가들은 비트코인을 사들였다고 합니다. 이 덕에 불과 두 달만에 비트코인 가격은 350% 이상 폭등했습니다.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를 뜻하는 브렉시트(Brexit) 사태나 최근 미국과 북한간 군사 긴장 때에도 암호화폐가 자산 도피처로서 주목받은 바 있습니다. 비트코인 가격이 400만원을 처음 넘긴 시점도 공교롭게 북한이 괌을 겨냥한다며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실험에 열을 올릴 시기였구요.

사실 암호화폐 자체가 법정화폐에 대한 불신에서부터 출발한 만큼 안전자산으로서의 성격이 강하다는 게 일반적인 통념이었습니다. 덴마크 대형 투자은행인 삭소뱅크(Saxo Bank) 제이콥 파운시 애널리스트도 지난 18일(현지시간) 보고서에서 “역사적으로 보면 우량한 암호화폐들은 브렉시트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 북한의 미사일 발사 시험 등 글로벌 불확실성이 고조되고 안전자산 선호심리가 강화될 때 가격이 상승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설명한 바 있습니다. 이렇다보니 암호화폐 강세론자들 가운데 몇몇은 기존에 안전자산으로 취급받고 있는 금(金)이나 주요 선진국 국채 등에 투자한 자금중 1% 정도만 흘러 들어와도 암호화폐 가격은 폭등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암호화폐시장에 많은 투기적 거래자들이 참여하고 가격 변동성이 커지면서 암호화폐가 안전자산이 아닌 위험자산의 행태를 보이고 있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암호화폐가 금과 같이 그 자체로 가치를 담고 있거나 국채처럼 발행 국가가 지급을 보증해주는 자산이 아니라는 건 현재로선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그런 점에서 일부 전문가들은 안전자산 선호가 매우 강한 시기에 암호화폐 가격이 상승하는 것은, 암호화폐가 안전해서라기보다는 위험자산 투자에 따른 기대수익률이 낮아진 탓에 상대적으로 고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암호화폐를 대체 투자처로 선택한 결과로 보고 있기도 합니다. 더구나 암호화폐는 주식처럼 그 자체로 많은 리스크에 노출돼 있는 자산이기도 합니다. 실제 암호화폐 가격은 수요와 공급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지만 해당 코인의 활용도나 대중들의 평탄, 거래소 상장과 하드 포크(hard fork)나 에어드랍(airdrop) 등 주식시장에서의 주가처럼 개별 재료에 민감하게 반응하기도 합니다. 증시에 비유하자면, 기업의 사업전망이나 지배구조, 배당 등에 따라 주가가 오르내리는 것과 유사하다는 겁니다.

이렇다보니 어느 시점에는 암호화폐가 위험자산과 동조화(coupling)를 띄는 것도 사실입니다. 올초에도 미국 주식시장이 조정을 보일 당시 주가지수와 암호화폐 가격이 밀접한 연계성을 보인 바 있습니다.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신(新)채권왕`으로 불리는 제프리 군드라크 더블라인캐피탈 최고경영자(CEO)는 이같은 견해를 가진 대표적인 인물인데요, 그는 이달초 “비트코인과 주가지수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면서 비트코인 가격이 주가에 선행지표가 되고 있다”며 암호화폐를 위험자산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그는 지난해 12월 중순부터 비트코인 가격이 급등한 뒤 한 달도 채 안돼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가 덩달아 사상 최고가 행진을 이어갔고, 올 2월 비트코인 가격이 고점대비 40% 가까운 급락세를 보인 뒤 1주일도 안돼 S&P500지수가 단숨에 12% 이상 급락했다는 걸 증거로 들이 댔습니다.

현 시점에서 암호화폐가 안전자산이냐, 위험자산이냐를 무 자르듯 결론 내리는 건 성급해 보이기도 합니다. 다만 시장이 좀더 성숙단계로 들어서기 전까지 암호화폐는 위험자산으로서의 성격을 띌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물론 불확실성이 고조되는 시점에 대체 투자처로 부각되며 안전자산과 유사한 가격 흐름을 보일 수도 있겠구요. 큰 보상(=높은 투자수익률)을 노린다면 그에 따른 리스크도 높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 자체로 위험자산 투자이며 이는 포트폴리오내에 작은 비중으로 한정지어야 합니다. 반면 불확실성을 일정부분 헤지하겠다면 안전자산 투자일 수 있지만 그 역시 포트폴리오 다변화 차원에서 크지 않은 비중으로 투자해야 합니다. 중요한 건 천편일률적으로 암호화폐를 정의내리는 건 적절치 않아 보입니다. 아직은 암호화페가 위험자산 성격이 더 강하다는 점을 인정하고 이를 안전하게 투자하는 길을 찾는 게 중요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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