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좌석제·계단형회의실…금융권에도 근무공간 혁신 바람

전상희 기자I 2017.10.19 06:00:00

카뱅 게임기·해먹 휴게실에 설치
케뱅 사무실을 정원분위기로 바꿔
하나銀 임원방 유리벽면으로 꾸며
파티션 없애고 곳곳 투명벽면
핀테크社도 개성만점 일터 눈길
직원 창의성·업무효율성 쑥쑥

카카오뱅크의 휴식공간 ‘이너피스’의 모습. 잔디밭을 연상시키는 초록색 장판에 게임기와 카카오프렌즈 인형, 해먹 등이 놓여있다. [사진=카카오뱅크 제공]
[이데일리 전상희 기자] 간편송금앱 토스의 이승건 대표는 사무실 내 고정석이 따로 없다. 노트북 하나를 손에 들고 100명의 직원들이 근무하는 사무실 곳곳을 옮겨다니며 자리를 마련하기 때문이다. 집중해야 할 프로젝트에 따라 관련 팀과 소통을 자유롭게 하고 업무 추진력을 높이기 위한 취지다. 사무실 한 켠에 높은 칸막이를 쌓아 임직원의 독립된 공간을 마련하는 보통의 기업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금융권 혁신 바람 속에 근무 공간의 고정관념이 깨지고 있다. 게임기와 해먹(그물침대)이 있는 휴게실과 자율좌석제로 운영되는 사무실, 계단식 의자에 자유롭게 걸터앉아 이야기하는 회의실 등. 제4차 산업혁명 시대 금융권에도 혁신과 소통이 주요 화두로 떠오르면서 기존 금융권에서 상상할 수 없었던 개방적이고 유연한 ‘스마트 오피스’ 바람이 불고 있는 모습이다.

◇“창의적 공간이 혁신 인재 만든다”…케뱅 ‘그린존’, 하나銀 ‘자율좌석제’ 등

금융혁신을 선도하고 있는 인터넷전문은행들은 직원들의 창의성과 업무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사무실 곳곳을 휴식 공간으로 할애했다. 경복궁이 내려다보이는 서울 광화문 더케이트윈타워에 위치한 케이뱅크에는 여느 카페 못지않은 세련된 인테리어의 사내 카페가 있다. 직원들의 휴식이나 세미나 용도로 활용하며 한편엔 전자다트 게임기도 마련돼 있다. 책상에 초록색 잎 모양의 캐노피를 설치하고 실내 공기 정화 식물, 공기청정기 등을 마련한 ‘그린존’도 있다. 한 케이뱅크 직원은 “사내 카페와 자유로운 복장 등 기존 금융권과 다른 분위기가 직원 개개인의 능률과 업무 효율성을 높이고 있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경기도 판교에 위치한 카카오뱅크는 사무실 한쪽을 ‘이너피스’라는 휴게실과 ‘피곤헷징’이라는 수면실로 구성했다. 특히 ‘이너피스’는 잔디밭을 연상시키는 초록색 바닥에 게임기와 해먹, 색색의 카카오프렌즈 인형 등으로 꾸며 은행 사무실보다는 야외 카페나 아이들 놀이방에 가까운 모습이다. 사무실 내 이동을 위해 직원들은 킥보드를 이용하기도 한다.

케이뱅크의 사내 카페. [사진=케이뱅크 제공]
시중 은행도 수평적 조직문화와 개방적 분위기를 이끌기 위해 다양한 공간 실험에 나섰다. KEB하나은행은 본사 건물을 서울 을지로 신사옥으로 이동하며 자율좌석제도를 도입했다. 날마다 근무할 수 있는 좌석을 선택하는 제도로 한 층에 함께 근무하는 부서 간에 자유롭게 섞여 앉을 수 있다. 임원실의 높은 칸막이는 투명한 유리벽으로 바꿨다. 수직적이고 서열을 중시하는 은행 문화 속에서 직급에 따라 달라지던 책상의 크기나 의자의 종류도 일원화했다. 직원들의 만족도도 매우 높다. KEB하나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중순 신사옥 근무 직원 2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70%는 이같은 변화에 만족한다고 답했다. 신사옥에서 근무 중인 한 직원은 “프로젝트에 따라 필요한 인원들이 모여 근무하거나 타 부서 직원들과 소통하며 전체적인 업무를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고 말했다.

KEB하나은행 을지로 신사옥에 마련된 도서관. [사진=전상희 기자]
◇탁구대서 ‘페이퍼리스·코드리스’ 회의…“격식은 없애고 효율은 높이고”

핀테크업체들의 사무실은 더욱 톡톡 튄다. 서울 을지로에 위치한 P2P(개인간거래)금융업체 렌딧의 사무실은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김성준 대표가 직접 디자인했다. 소통·협업을 위한 개방성과 창의성·집중력을 발휘하기 위한 폐쇄성의 조화에 초점을 맞춘 점이 특징이다. 사무실 내에는 벽이나 파티션이 없으며 곳곳에 설치된 커뮤니케이션 보드와 투명 벽면을 활용해 어디서나 자유로운 토론이 가능하다. ‘크리에이티브홀’은 수평적 대화가 오갈 수 있도록 계단형 회의실 형태로 만들었다. 회의가 진행되는 동안 직급이나 부서에 상관없이 전 직원이 자유롭게 앉아 곳곳에 설치된 보드에 의견을 제시하고 대표가 빈백 소파에 누워 회의에 참여하는 모습도 흔한 풍경이다.

김성준 대표는 “디즈니나 애플, 페이스북 같이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기업들일수록 공간 연구에 많은 리소스를 투자한다. 다양한 사람들과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무 공간이야말로 과학적인 배려가 필수적”이라며 이 같은 공간 설계의 이유를 밝혔다.

렌딧의 회의 모습. 직원들이 크리에이티브홀에 앉아 회의에 참여하고 있다. [사진=렌딧 제공]
서울 을지로 공유오피스 위워크에 자리잡은 금융상품추천플랫폼 핀다(finda)의 직원들은 매주 금요일 오후마다 탁구대가 놓인 회의실에서 TGIF(Thanks God it’s Finda day) 회의를 진행한다. 종이와 전자기기 코드는 사라진 페이퍼리스(Paperless)와 코드리스(Cordless) 방식의 회의다. 회의가 시작되면 탁구대는 회의 테이블로 변하고 직원들은 아이디어가 생길 때마다 무선 통신 시스템을 활용해 각자의 스마트폰에 적은 메모를 바로 공용 화면에 띄워 공유한다. 이혜민 핀다 대표는 “할 말만 해야 하거나 억지로 할 말을 생각해야하는 형식적 회의는 비효율적”이라며 “전체 직원들이 스스럼 없이 아이디어와 의견을 나눌 수 있도록 불필요한 격식은 없애고 편안하고 개방적인 분위기로 회의를 진행한다”고 말했다.

탁구대 테이블에서 페이퍼리스·코드리스 회의로 진행되는 핀다의 TGIF 모습. [사진=핀다 제공]
핀다의 한 직원이 해먹에 앉아 업무를 하고 있다. [사진=핀다 제공]
이같은 공간 변화는 직원들의 창의성과 업무 효율성을 높이는 것으로 분석된다. 한국생산성 본부가 지난 2014년 발표한 ‘공공기관 스마트워크와 조직 창의성 보고서’에 따르면 조직의 창의적 환경 조성과 창의적 성과물 산출 간에는 매우 높은 상관관계(0.73)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경상 카이스트 문술미래전략대학원 교수는 “스마트오피스를 도입한 기업의 경우 실제 생산성이 2% 올라가고 이직률이 15% 낮아진다는 연구결과도 있다”며 “칸막이 사무실에서 전문성만 강조하던 과거와 달리 정보화시대 소통과 창의, 효율이 중요해지고 있어 자율좌석제, 사내 휴식공간 확대, 페이퍼리스 회의 등 변화의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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