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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일자리 없어 월세 못내요"…창신동 쪽방촌의 겨울

이슬기 기자I 2017.12.12 06:30:00

상담소 직원들, 매일 두 차례 '까치발'로 집집마다 순찰
중증환자·고령자 건강 확인, 수도관 동파·화재 예방 등도
가장 일자리 없는 시기, 쪽방촌 '겨울나기'의 어려움

서울 동대문쪽방상담소 간호사 유모(28)씨가 지난 8일 오전 창신동에 있는 한 쪽방 주민의 건강을 살피고 있다.(사진=이슬기 기자)
[이데일리 이슬기 기자] “어르신 계세요?”

아침 최저기온이 영하 7도까지 떨어지며 한파가 몰아친 지난 8일 오전 서울 창신동 쪽방촌 골목. 사회복지사 이성민(51) 실장이 부르는 소리에 방 안에서 한 남성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렸다. 옆에 있던 간호사 유모(28)씨가 “60대 혈액암 환자”라고 귀띔했다.

어르신의 안색을 살핀 유씨는 병원은 잘 다니고 있는지 등을 물은 뒤 차트에 꼼꼼히 기록했다. 유씨는 “중증환자나 80세가 넘는 고령자는 매일 방문해 건강 상태를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까치발로 하루 두 번씩 수천 개 계단 오르는 쪽방상담소

본격적인 한파가 찾아오면 쪽방상담소 직원들의 발걸음도 바빠진다. 한가할 때가 없는 일이지만 난로 화재와 빙판길 사고 예방 등 쪽방촌 주민들의 겨울나기 준비를 도와야 해 겨울철은 특히 바쁜 시기다.

쪽방상담소 직원 3~4명이 오전과 오후 하루 2번씩 쪽방촌을 돌며 주민들을 살핀다. 동대문쪽방촌 거주민은 320여명이다.

이날은 ‘크리스마스 키트박스’를 지급한다는 알림장까지 전달해야 하는 과제가 더해졌다. 연말 이맘때엔 쌀 20㎏과 담요, 통조림 음식을 선물 박스에 담아 65세 이상 어르신들에게 나눠준다.

이 실장은 “겨울은 1년 중 가장 일거리가 없는 시기라 월세가 밀리는 등 쪽방촌 주민들의 생계에 어려움이 커진다”며 “‘어금니 아빠’ 사건도 있고 해서 올 겨울 후원물품이 줄어들까봐 걱정했는데 다행히 예년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전했다.

두 사람은 익숙한 걸음으로 쪽방촌 구석구석을 누볐다. 골목 어귀에는 쪽방촌 주민들이 팔기 위해 모아둔 종이박스와 고철 등이 쌓여 있어 어른 한 명이 지나가기에도 비좁았다.

특히 쪽방촌 계단은 대부분 세로 폭이 15㎝ 정도에 불과해 까치발을 하고 계단을 디뎌야 한다. 힘들지 않느냐고 묻자, 이 실장은 “10년 동안 해 온 일”이라며 대수롭지 않아 했다. 주민들 건강을 살피고 알림장을 배부하며 수십 개의 건물 계단을 오르내리자 한파에도 이마엔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혔다.

◇일자리 줄어드는 겨울철은 쪽방촌의 위기

일을 하거나 일자리를 구하러 나간 탓에 오전에는 쪽방촌에 자물쇠가 채워진 곳이 많다. 며칠씩 지방에 내려가 일하는 경우도 많아 후원 물품 상자가 문 앞에 그대로 쌓여 있는 방들도 눈에 띄었다.

한 쪽방촌 대문을 열자 60대 남성이 냄비를 씻고 있었다. 이 실장이 “수급 떨어졌다면서요”라고 말을 건네자 그는 “어떻게든 다시 취업해서 돈 벌어야죠”라고 답했다.

이 남성은 두 달 전 청소용역업체에 취업해 기초생활수급대상에서 제외됐지만, 최근 원청업체가 갑자기 계약을 해지한 탓에 일자리를 잃어 당장 월세 내기조차 막막한 상태였다.

이 실장은 “어렵게 취업을 해도 금방 해고되는 경우가 잦아 이 곳 주민들은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을 때까지 차라리 기초생활수급 지원을 받는 편이 나을 수 있다”고 했다.

상담소 직원들을 만난 주민들은 “귀가 잘 안 들리는데 보청기는 없냐” “이가 너무 아프다”는 등 갖가지 요구를 쏟아냈다. 이 실장은 익숙한 듯 “도와줄 수 있는지 알아보겠다”고 다독인 뒤 발걸음을 옮겼다. 이 실장은 “여러 사연이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다 감당해 줄 수가 없다”며 “어려운 걸 뻔히 알면서도 도와주지 못할 때가 가장 마음 아프다”고 털어놨다.

가정이 해체되거나 장기간 실직, 신용 불량 등 어려운 경제 사정 탓에 정상적인 주거 공간에서 생활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대개 이곳까지 흘러온다. 쪽방촌은 노숙의 위기를 지닌 빈곤계층이 마지막으로 선택하는 보금자리인 셈이다.

동대문쪽방촌에서 나가는 사람들 대부분은 다른 쪽방촌이나 기껏해야 고시원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사회의 주변부를 맴돈다. 대다수가 특별한 기술이 없어 건설현장 잡부일 마저 끊기는 겨울철엔 일자리 얻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큰 소망은 없어요. 그저 쪽방촌 주민들에게 꾸준히 사회복지 서비스를 지원할 수만 있기만 바라는 거죠.”

낮 12시쯤 순찰을 마친 이 실장은 점심을 챙길 겨를도 없이 쪽방촌 주민이 바리스타로 일하는 상담소 카페 일을 도우러 가야 한다며 바삐 걸음을 옮겼다.
서울 동대문쪽방상담소 직원과 간호사가 창신동에 있는 쪽방 건물을 순찰하고 있다.(사진=이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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