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병원만 환자 결박 제한…반쪽 대책이 밀양화재 피해 키웠다

김성훈 기자I 2018.01.29 06:30:00

밀양병원 중환자실 환자 18명 결박해 구조 지연
장성요양병원 화재 후 요양병원 '결박 기준' 마련
요양병원만 기준…일반병원은 결박 '사각지대'
"일반 병원도 의사 재량 아닌 메뉴얼 만들어야"

경남 밀양시 세종병원 화재 이틀째인 27일 오후 병원 응급실 사고현장에서 경찰들이 일반인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데일리 김성훈 기자] 38명의 목숨을 앗아간 경남 밀양 세종병원 화재에서 중환자실 환자 상당수가 침상에 결박돼 구조에 차질을 빚은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일고 있다. 보건당국이 지난 2014년 21명이 숨진 장성 요양병원 화재 이후 요양 병원 환자에 대한 결박 기준을 마련했지만 일반 병원은 의료진의 판단에 따라 자유롭게 환자 결박이 가능하다. 반쪽짜리 대책이 인재(人災)를 부채질했다는 지적이다.

◇밀양 병원 3층 환자 18명 결박…구조활동 지연

밀양 소방서는 26일 화재 발생 당시 구조과정에서 현장에서 환자 다수가 침상에 결박된 상태로 발견됐으며 이를 제거하는 과정에서 구조작업이 지연됐다고 밝혔다. 밀양 소방서 관계자는 “결박 상태 그대로 질식해 사망한 분도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밀양 세종병원 화재수습본부에 따르면 가장 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3층 중환자실 환자 34명 가운데 최소 18명이 링거 등 치료를 위해 한 손이 침대에 묶인 상태였다. 환자들은 태권도복 끈과 로프 등으로 한쪽 손이 묶여 있었고 구조대가 결박을 푸는데 환자당 30초에서 1분가량을 소요했다.

결박은 병원 등에서 환자들이 주삿바늘을 빼는 등 의료 활동에 저항하거나 자해에서 보호하기 위해 신체보호대(억제대)를 통해 침상에 신체 일부를 묶는 것을 말한다.
세종병원 화재 참사 사흘째인 28일 오전 세종병원 화재 현장에서 국과수, 경찰, 소방합동 현장 감식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요양병원에만 결박 기준…일반병원은 결박 ‘사각지대’

앞서 2014년 6월 전남 장성 효실천사랑나눔 요양병원 화재 당시 일부 환자가 손발이 묶여 대피하지 못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에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는 요양병원 내 인권침해 예방·구제제도 마련, 신체보호대 사용 시 법률적 근거를 마련하라고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권고했다.

2015년 신설한 ‘의료법 시행규칙’ 36조 6항에 따르면 환자 안전을 위해 결박할 경우 사용 시간을 최소한으로 하고 의사의 처방을 토대로 환자나 보호자에게 사전동의를 받아야 한다.

이밖에 △응급 시 쉽게 풀 수 있거나 자를 수 있는 신체 보호대 사용 △최소 2시간 간격으로 신체보호대 환자 상태 평가 △신체 보호대 사용 중인 환자 상태 관찰·기록해 부작용 예방 등의 지침을 정하고 위반하면 시정명령을 한다는 세부 지침이 담겨 있다.

문제는 정부가 요양병원에만 환자 결박 기준을 적용하고 일반병원 내 환자 결박 기준은 따로 마련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인권위 권고에 따라 기준을 만들었다”면서도 “일반병원과 비교해 요양병원에서 결박을 남용하는 경우가 많아 대상을 요양병원으로 한정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세종병원의 경우 불이 난 본관은 일반병원으로 등록돼 의사의 판단에 따라 결박을 하더라도 위법의 소지는 없다”고 덧붙였다.

한 의료업계 관계자는 “인력 부족에 시달리는데다 신체보호대를 사용하지 않으면 중환자 관리에 어려움을 겪다 보니 일반 병원에서의 보호대 사용을 모조리 막을 수는 없다”면서도 “일반 병원에서도 신체보호대나 결박에 대한 최소한의 가이드라인 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밀양 세종병원 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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