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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의 암호화폐 읽기]<27>포기못할 시뇨리지, 법정화폐와의 불화

이정훈 기자I 2018.04.07 07:23:54

"화폐가치 지지 믿음 배신"…출생부터 법정화폐와 불화
가격 변동성 서서히 완화될 것…거래처리속도 보완중
하드포크로 유동성 확충…화폐로서의 면모 갖춰가는 중
역할 커질수록 견제 커질 운명…경제 가치 높일지가 관건

비트코인 채굴량(=공급량)은 지속적으로 감소하도록 설계돼 있고 이로 인해 통화량 증가율은 바닥권으로 수렴하게 된다.


[이데일리 이정훈 기자] 이 연재 기사의 출발점인 2편에서 제가 암호화폐를 두고 `단순한 혁신을 넘어 하나의 혁명에 가깝다`는 표현을 썼던 걸 아마 기억하실 겁니다. 화폐를 발행하고 유통량을 조절하는 중앙은행과 같은 존재를 부정하는 지점에서 암호화폐가 출발했다는 건 화폐를 발행하는 독점적인 중앙권력에 대한 도전이자 반기(反旗)라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실제 비트코인을 개발한 사토시 나카모토는 지난 2009년 자신의 논문 `비트코인: P2P 전자현금시스템`에서 “중앙은행이 화폐가치를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은 배신” 당했다고 선언했었죠. 결국 그 등장에서부터 암호화폐는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법정화폐와의 불화 또는 반목을 잉태할 수 밖에 없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시뇨리지(Seigniorage)`라는 경제용어가 있습니다. 중앙은행이 법정화폐를 발행함으로써 얻게 되는 이익을 설명하는 표현인데요, 화폐 액면에 표시된 실질가치에서 이를 발행하는데 들어가는 제조비용을 뺀 차익을 뜻하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한국은행이 단돈 300원도 안되는 제조원가를 들여 1만원권이라고 쓰인 지폐 한 장을 찍으면 최소 9700원에 이르는 차익을 단 번에 얻게 되는 셈입니다. 이런 점에서 중앙은행이 가지는 독점적 발권력 또는 화폐주조권을 부정하고 있는 암호화폐는 중앙은행이나 중앙정부가 도저히 인정할 수 없는 존재라고 하겠습니다. 지난달말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도 국회 청문회에서 “암호화폐가 화폐 성격을 가지기엔 아직까지 멀었다”고 지적하면서 “우리뿐 아니라 다른 국가 중앙은행들도 암호화폐가 기술적인 측면에서 이점을 가져다주긴 하지만 화폐로는 볼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화폐라기보다는 하나의 자산이나 상품이라는 뜻입니다.

이렇다보니 암호화폐가 가지고 있는 가장 결정적인 과제는 어떻게 법정화폐와의 불화를 누그러뜨릴 수 있느냐 하는 일일 겁니다. 그래야만 암호화폐가 좀더 보편적으로 활용될 수 있고 이를 통해 화폐로서의 기능을 일부라도 담당하게 돼 기존 화폐를 보완해주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앞서 우리는 현 시점에서 암호화폐가 왜 화폐로 불릴 수 없는지 몇 가지 한계점을 살펴 봤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암호화폐 진영 스스로가 이를 극복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점에서 향후 일부 영역에서는 화폐의 기능을 대체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섞인 전망도 함께 짚어 봤습니다. 현재 비트코인을 비롯한 암호화폐의 가격 변동성이 매우 크고 거래 처리속도가 더디다는 점이 화폐가 되지 못하는 이유라고 지목했습니다만, 비트코인의 거래 처리속도를 획기적으로 줄이는 기술들은 이미 속속 등장하고 있구요, 가격 변동성도 서서히 줄어들 것으로 예상됩니다. 제도권 금융회사들이 포트폴리오 다변화를 위해 암호화폐에 조금씩 투자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만큼 금이나 달러, 엔화 등의 자산과 연관성을 높이면서 수익률이 낮아지고 안정성은 높아지는 상황이 올 것이라고 봅니다.

아울러 비트코인을 비롯해 발행량이 정해져 있는 암호화폐는 화폐로서 자리매김하는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과거 금본위제에서도 국가가 보유한 금 가치만큼만 통화를 찍을 수 있었는데, 경제가 성장해 생산량은 늘어나지만 돈의 양이 이를 따라가지 못한다면 제품 가격은 내려갈 수 밖에 없겠죠. 이는 금본위제가 실패한 가장 큰 이유인데요, 통화 공급량이 적당한 속도로 늘어나지 않으면 디플레이션으로 경제 성장이 어려워지고 금융시스템이 불안할 때 중앙은행이 유동성을 공급하지 못하는 등 금융 안정정책도 수행하기 어려워 집니다. 그러나 이는 하드 포크(hard fork)를 통해 극복할 수 있기 때문에 쉽사리 단정짓기 어려운 문제이기도 합니다.

다만 암호화폐가 법정화폐를 완전히 몰아내고 이를 대체할 순 없구요, 암호화폐를 지지하는 쪽에서도 이렇게 주장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더리움 창시자인 비탈릭 부테린 역시 지난해 9월 한국을 찾았을 때 “암호화폐는 큰 가격 변동성 때문에 월급을 받거나 시장에서 물건을 구입하는데 있어서 가격 안정성을 가진 법정화폐를 완전히 대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예견했습니다만 “암호화폐와 법정화폐는 각자의 역할을 있을 것이고 암호화폐는 사물인터넷(IoT)이나 블록체인 네트워크를 통한 거래 등에서 법정화폐를 보완하는 수단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즉, 암호화폐가 제한적이고 부분적인 화폐의 기능을 담당하며 법정화폐를 보완해주는 역할을 할 것이라는 얘기죠.

이 대목에서 다시 암호화폐의 출신성분을 거론해야할 듯 한데요. 암호화폐는 그 자체로 송금이나 지급결제 등에서 더 많은 역할을 수행하면 할수록 중앙정부나 중앙은행, 기존 금융권으로부터 강력한 견제와 통제 압력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슬픈 운명에 놓여 있습니다. 따라서 암호화폐가 기존 우리 기존 경제시스템에 얼마나 큰 가치를 더할 수 있느냐가 미래에 일부분이라도 화폐의 기능을 나눠가질 수 있을지를 좌우할 것으로 보입니다. 암호화폐의 기술 발전도 이런 긍정적 요소를 더 유지하고 강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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