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확 꺾인 기업심리…"내년 적자 계획 짜야 할 판"(종합)

김정남 기자I 2018.11.14 04:30:15

한은·상의·전경련·중기중
기업경기실사지수 분석해보니…
11월 이후 일제히 하락 방향 일치
세계 경기마저 침체 징후 나타나
주력 업종 "내년 보수적 계획 짠다"
금융시장, 내년 성장률 기대 낮춰
11월 인상 후 추가 인상 어려울듯

[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이데일리 김정남 기자] 기업의 경제심리를 정기적으로 산출하는 기관은 총 네 곳이다. 한국은행을 비롯해 대한상공회의소, 전국경제인연합회, 중소기업중앙회다.

기업경기실사지수(BSI)의 의미는 가볍지 않다. ‘경제 첨병’인 산업계의 움직임을 빠르게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은의 국내총생산(GDP), 통계청의 산업활동동향 등은 한두달 시차를 두고 나온다. 한 정책당국 인사는 “예상하지 못했던 충격이 있거나 주목할 만한 정책을 펼 때 기업들이 어떻게 반응하는 지는 BSI를 보고 파악할 수 있다”고 했다.

네 곳의 BSI는 설문조사 방식 등에 따라 방향성이 엇갈리는 경우가 적잖다. 그런데 최근 조사에서는 네 곳의 BSI가 동시에 하락하고 있어 주목된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연말이면 내년 경영계획을 짜야 할 시기”라며 “특히 주력 업종에서 내년 계획을 보수적으로 짠다는 얘기가 많이 들린다”고 했다. 반짝했던 세계 경기마저 꺾이기 시작하는 때가 내년이라는 위기감 탓이라고 한다.

◇내년 경영계획 짤 시기인데… 몸 움츠려

13일 이데일리가 각 기관의 BSI를 분석해보니, 올해 11월 이후 업황 전망 BSI는 일제히 꺾이고 있다. 한은의 11월 전(全)산업 전망 BSI는 기준값인 100에 한참 못 미치는 73으로 지난해 1월(72) 이후 최저치였다. 올해 들어 매달 오르내림을 반복하다가, 4분기 이후 하락 쪽으로 방향을 잡은 모양새다.

대한상의도 마찬가지다. 4분기 전국 2200여 제조업체의 전망 BSI는 75로 전기 대비 무려 12포인트 내렸다. 지난해 1분기(68) 이후 최저다. 올해 2분기까지만 해도 97까지 상승했으나, 이후 다시 고꾸라지고 있다. 600대 대기업(전경련·97.3→90.4)과 3100여 중소기업(중기중·89.5→86.1)의 11월 BSI도 떨어졌다.

연말 기업의 눈이 어두워진 건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 당장 내년 경영계획에 직접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충남의 한 자동차부품업체 A사 관계자는 “공장을 돌리는 고정비는 정해져 있는데, 빠른 시일 내에 수요가 따라줄 것 같지 않다”며 “내년 사업계획은 적자를 감수하고 세워야 할 판”이라고 했다. 한은에 따르면 자동차업의 11월 전망 BSI는 68로 전월(75) 대비 7포인트 내렸다. 4분기 대한상의 조사를 보면, 자동차·부품(66) 외에 기계(69), 철강(70), IT·가전(73) 같은 주력산업의 체감경기도 최하위권을 기록했다. 김문태 대한상의 경제정책팀장은 “미·중 무역분쟁 심화의 확산과 내수 침체 장기화 우려 등 대내외 불확실성이 낙폭을 키웠다”고 했다. 중기중 역시 “국내 제조업이 위축 국면으로 돌아섰다”고 보고 있다.

송원근 한국경제연구원 부원장은 “국내에서 향후 경기 전망에 대한 비관론이 커지고 있다”며 “세계 경기 침체 징후도 뚜렷하게 보이고 있다”고 우려했다.

해외의 눈도 비슷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한국의 9월 경기선행지수(CLI)는 99.1로 전월 대비 0.2포인트 하락했다. OECD 평균(99.5)보다 낮다. 지난해 3월(101.1) 이후 1년6개월째 내림세다. OECD 경기선행지수는 6~9개월 후 경기를 예측하는 지표다. CLI가 기준값 100을 하회하는 와중에 하락하고 있다는 점에서 ‘경기 수축’ 국면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금리 인하 목소리 조금씩 진지해져

금융시장 사정도 다르지 않다. 여의도는 요즘 내년 경제전망에 한창인데, 산업계가 움츠러드는 만큼 성장률 전망치는 낮아지고 있다. 이날 경제전망 보고서를 펴낸 KB증권의 장재철 수석이코노미스트는 “내년 세계 경제의 특징은 선진국과 신흥국의 동반 성장세 약화”라고 요약했다. 그는 내년 국내 성장률을 2.4%로 점치고 있다. 박정우 한국투자증권 이코노미스트는 “내년 1분기 경기 침체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내년 전체는 2.3% 성장에 그치면서 2.0~2.5%대 새로운 밴드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당국의 거시정책도 완화적으로 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특히 한은이 올해 11월 기준금리 인상(1.50%→1.75%) 이후 내년에는 추가로 올리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목소리가 많다. 통화정책에 민감한 국고채 3년물 금리가 좀저첨 2%를 넘지 못하는 게 그 방증이다. 이날 국고채 3년물 금리는 1.940%에 마감했다.

권영선 노무라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내년 금리는 1.75% 동결 이후) 내후년인 2020년 오히려 1.50%로 인하할 것”이라고 했다. 노무라는 내년과 내후년 성장률을 각각 2.5%, 2.3%로 제시했다.

채권시장 한 인사는 “추후 기준금리의 기조는 인상이라는 시장 컨센서스가 조금씩 약해지고 있다”며 “몇 달 전만 해도 우스갯소리로 치부됐던 인하 언급이 외국계기관을 중심으로 약간 더 진지해진 느낌”이라고 전했다.

올해 5월 말 22년 만에 폐쇄된 한국GM 군산공장의 정문에 적막감이 감돌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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