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 침체에 관세폭탄·파업…'보릿고개' 중소 협력사

김정유 기자I 2018.07.23 05:40:00

자동차 전자 등 전방산업 부진에 부품사들 ‘휘청’
워크아웃 신청, 납품물량 20% 감소 등 피해 누적 우려
철강업종 관세 폭탄, 조선업종 파업 등으로 협력사 피해 양산

[이데일리 이동훈 기자]


[이데일리 김정유·이소현·권오석 기자] 연간 5000억원대 매출을 올리는 경남 소재 자동차 내장재 업체 A사는 올해 연간 적자전환을 예상하고 있다. 현대·기아차의 1차 협력사인 A사는 2016년만해도 연간 200억원대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하지만 이후 수익성이 악화하면서 올 1분기에는 9억원의 영업손실을 내며 분기 기준 적자로 전환했다. A사는 현대·기아차가 중국시장에서 부진을 겪는데 따른 직격탄을 맞고 있다. A사 매출 중 70%에 달했던 중국 수출(간접) 비중은 최근 30%대로 낮아진 상태다. A사 관계자는 “완성차 업체의 판매 부진 영향을 고스란히 받고 있다”며 “현 추세가 이어진다면 올해 매출 급감과 함께 적자로 전환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스마트폰용 연성회로기판(FPCB)을 생산, 삼성전자 등에 납품하는 인터플렉스(051370)는 올 1분기에 215억원의 영업손실을 봤다. 지난해 연간 614억원의 영업이익을 낸 이 회사는 올해 480억원 정도 적자를 낼 것이라는 증권가의 부정적인 전망도 나온 상황이다. 인터플렉스는 실적 개선을 위해 거래처 다변화를 꾀하고 있지만 부품 설계를 변경해야 하는 등의 이유로 이마저도 여의치가 않다.

자동차와 전자, 철강, 조선 등 국내 주요 전방산업이 동반 부진을 겪으면서, 전방산업 대기업들과 협력하는 중견·중소 부품 업체들의 실적도 악화하는 추세다. 22일 증권가에 따르면 S&T모티브(064960), 파트론(091700), 코프라(126600), 에스엘(005850) 등 자동차·전자업종 분야를 대표하는 부품업체들이 전방산업 부진과 함께 미·중간 무역전쟁 등 복합적인 요인으로 인해 올 하반기 수익성이 악화할 전망이다.

자동차업계에선 현대·기아차, 한국GM 등 완성차업체들의 실적 부진에 미국발 ‘관세폭탄’ 등이 더해지면서 부품 협력사들의 실적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와 관련, 올 상반기 국내 자동차 생산량은 200만4744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3% 감소했다. 올 하반기에는 생산량 감소폭이 더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렇듯 전방산업 침체 영향으로 중소 협력사들은 최근 자금조달까지 어려움을 겪는 등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일례로 현대·기아차의 1차 협력사인 리한이 실적 악화를 견디지 못하고 지난달 말 산업은행에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을 신청했다. 같은 자동차 부품업체인 성우하이텍(015750)부산주공(005030)은 최근 나란히 신용등급이 한 단계씩 하향 조정됐다.

이지웅 한국기업평가 책임연구원은 “국내 차량용 부품 협력사들은 완성차업체와의 전속성이 매우 강하며, 때문에 완성차업체의 판매량이 실적에 직결한다”며 “협력사들의 투자는 완성차업체들의 정상적인 스케줄에 따라 생산이 이뤄질 경우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완성차 판매가 부진할 경우 고스란히 부담으로 남는다”고 지적했다.

[이데일리 이동훈 기자]


자동차뿐 아니라 전자업종의 부품 협력사들 사이에서도 곡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국내 최대 스마트폰 업체인 삼성전자(005930)가 관련 사업에서 부진을 겪으면서 영향을 고스란히 받고 있는 것. 삼성전자는 올 2분기 영업이익이 7분기만에 처음으로 전분기대비 감소세를 보였다. 스마트폰 사업에서의 부진이 악영향을 미쳤다.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사업이 흔들리자 부품 협력사들이 줄줄이 휘청이는 상황이다.

삼성전자에 전자부품을 납품하는 B사도 올 1분기 매출액이 전년 동기대비 50%나 급감했다. 삼성전자 의존도가 높은 B사는 삼성전자가 출시한 전략(플래그십) 스마트폰 모델의 판매가 부진하자, 현재 다른 거래처를 뚫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이미 삼성전자 모델에 적합하도록 만들어진 부품들을 단기간에 다른 업체에 납품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 B사 관계자는 “공정 구조와 라인이 달라 부품 설계를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한다”며 “때문에 삼성전자 외에 다른 거래처를 단기간에 확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어 “최소한 올해는 실적 악화가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또 다른 전자부품업체 C사 역시 올 들어 삼성전자에 납품하는 물량이 전년 동기와 비교해 20% 이상 줄었다. C사 임원은 “그동안 국내에서의 부품 생산 비중이 높았지만, 거래처 물량 감소와 함께 인건비 부담이 증가하면서 고민 중인 상황”이라며 “중장기적으로 동남아에 있는 공장에서의 생산 물량을 늘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철강업종에 속한 중소 협력사들 역시 관세 폭탄 등의 대외 변수로 사면초가에 내몰렸다. 철강업종에선 최근 유럽연합(EU)이 일부 품목을 대상으로 세이프가드를 발동, 포스코 등 대기업들의 타격이 예상된다. 한국이 EU로 수출하는 해당 철강제품 규모는 330만2000t으로 금액으로 환산시 29억달러(한화 약 3조2800억원)에 달한다. 앞서 미국도 올해 한국의 대(對)미 수출 물량을 최근 3년간 평균치의 70%로 제한, 중소 협력사들은 올 하반기 수주량 급감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다.

조선업에 속한 중소 협력사들 역시 지난해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 가동중단에 이어 최근 현대중공업 노조의 전면 파업 등이 더해지면서 최악의 상황을 맞고 있다. 전북 군산시에 본사를 둔 조선 기자재 업체 D사 관계자는 “협력사 입장에선 일정량 이상 납품이 이어져야 수익을 겨우 낼 수 있는 구조”라며 “대기업 노조파업이 장기화할 경우 실적 악화는 불보듯 뻔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동주 중소기업연구원 기획조정본부장은 “일본의 자동차 부품업체 덴소는 도요타의 협력사로 사업을 시작했지만 이후 해외로 거래처를 넓히며 독자적으로 성장, 글로벌 부품업체로 성장했다”며 “반대로 우리나라는 대기업이 기술을 독식하고 중소 협력사는 단순 임가공만하는 수준이어서 전방산업 침체에 고스란히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는 구조”이라고 말했다. 이어 “중소 협력사들도 독자적 역량을 쌓고 특정 대기업 의존도를 낮춰 대내외적인 변수에 덜 민감한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지난 19일 오후 울산시 동구 현대중공업에서 이날 전면파업에 들어간 노조가 파업 출정식을 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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