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내가 보기에 미인이라"…성희롱 피해자 두 번 울린 檢 조정위원

조해영 기자I 2019.01.17 14:15:03

카톡방 성희롱 피해자에 부적절한 발언
"남자들은 자기들끼리 모이면 그런 분위기가 있다"
명문대생 가해자 두고 "`스카이`에 훌륭한 학생 많아"
해당 지검 "비슷한 일 없도록 주의하겠다"

서울 도봉구에 위치한 서울북부지방검찰청. (사진=이데일리DB)


[이데일리 조해영 기자] 형사사건 당사자 간 합의를 이끌어 내야 하는 형사조정위원이 성희롱 피해자에게 부적절한 발언으로 2차 피해를 입힌 사실이 확인됐다. 문제가 된 형사조정위원은 피해자에게 “내가 보기에 미인이다”, “남자들이 모이면 그런 말을 하는 분위기가 있다”와 같은 성희롱적인 발언을 했다는 증언이다.

◇“내가 보기에 미인이기도 해서…” 부적절 발언

지난 14일 오후 서울북부지검에서 열린 형사조정절차에 참석한 성희롱 피해자 A씨는 조정위원으로부터 가해자를 옹호하는 듯한 발언을 들었다. A씨에 따르면 절차에 참석한 3명의 위원 가운데 한 명은 A씨에게 “내가 남자라서 남자 편을 드는 건 아니지만 대통령 안 보는 데서 대통령 욕도 많이 한다”고 운을 뗀 뒤 “A씨가 내가 보기에 미인이기도 해서…”라고 말했다.

이 위원은 합의금이 통상적으로 어느 정도 수준인지를 묻는 A씨의 질문에 “자기들끼리 모르는 데서 조금 잘못을 했는데 학생이니까 금액을 너무 부담을 주는 건 조금…”이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위원은 A씨에게 “가해자의 가정 형편에 여유가 있는지”를 묻기도 했다. A씨가 자신이 바라는 합의금 액수를 말했을 때엔 “괘씸하지만 용서하는 마음이 필요할 것 같다”고 했다.

앞서 A씨는 지난해 8월 지인 B씨를 모욕죄로 고소했다. B씨는 지인과의 카카오톡 채팅방에서 A씨의 사진을 공유하며 A씨를 성적으로 평가하고 험담한 혐의로 검찰에 넘겨졌다. A씨는 지인으로부터 ‘카톡방 성희롱’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아 정신과 치료를 받기도 했다.

사건을 맡은 검찰은 A씨 사건에 대해 형사조정 권유를 했다. 형사조정은 법적 처벌 대신 당사자 간 화해를 꾀하는 제도다. 사건마다 3명의 조정위원이 참석해 양측의 이야기를 듣고 합의를 유도한다. 조정위원은 민간 출신으로 법조계나 교육계 출신 등 조정능력이 있다고 판단되는 이들을 절차를 거쳐 위촉한다.

A씨의 성희롱 사건을 중재하기 위해 모인 자리였지만,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이야기가 오고간 것. 이 위원회에서는 가해자를 옹호하는 발언도 이어졌다. 한 위원은 “남자들은 자기들끼리 모이면 쓸데없이 여자들이 들으면 기분 나쁜 얘기를 하는데, (얘기를) 안 하면 빠지는 것 같은 그런 분위기가 있다”며 “‘미투(Me too·나도 말한다)’ 이전엔 죄의식을 모르고 여자를 비하하는 얘기를 많이 했다”고 발언했다.

이 밖에도 B씨가 명문대 재학생인 것과 관련해 “요즘 `스카이 캐슬`이라는 드라마가 인기인데 스카이(서울대·고려대·연세대) 학생들이 사회적으로 대우를 받고 훌륭한 학생도 많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피해자 “무력감 느꼈다”…檢 “주의 시킬 것”

위원회에 참석한 A씨는 “조정위원이 내가 겪은 피해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다고 느낀 것은 물론이고 가해자를 옹호하는 듯한 말을 들으면서 무력감을 느꼈다”며 “미인이라서 어쩔 수 없다는 뉘앙스의 발언도 상당히 불쾌했다”고 말했다.

해당 지방검찰청인 서울북부지검은 A씨가 들었던 발언이 실제로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한편 이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유의하겠다는 입장이다.

서울북부지검 관계자는 “해당 조정위원에게 확인한 결과 그렇게 말한 사실이 있다고 한다”며 “조정을 위해 그렇게 말했다는 취지로 답변했다”고 밝혔다. 이어 “향후 조정절차 과정에서 사건 당사자에게 그런 말을 하지 않도록 당부하겠다. 담당자를 통해 언행에 유의하라는 교육을 하라고 지시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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