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홍 사령관 "부대관리는 사람관리..소통과 단합이 최우선"

김관용 기자I 2016.11.21 06:30:00

39년 軍 생활 마무리 하는 김진홍 공군 방공유도탄사령관
공군 방공유도탄 발전과 함께한 산증인
패트리어트 및 천궁 사업 주도, 北 탄도탄 위협 대응에 전력
전역 앞두고 예하 부대 간부들에 "고마웠다" 문자메시지

[오산=이데일리 김관용 기자] “제 인생에 크신 배려와 사랑을 보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제2의 인생을 살아가면서 조금씩이나마 보은토록 노력하겠습니다.”

김진홍 공군 방공유도탄사령관(소장)이 전역을 앞두고 예하 부대 간부들에게 보낸 문자메시지 중 일부다. ‘덕장’(德將)으로 평가받는 그의 마음 씀씀이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김 소장은 12월 1일 사령관 이임식을 끝으로 39년의 군 생활을 마감한다. 그의 후임으로는 공군 제3방공유도탄여단장인 윤성한 소장(진)이 내정됐다.

김진홍 소장이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그의 군 생활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공군 제공]
김 소장은 공군 방공유도탄 부대의 살아있는 역사다. 육군 방공포병사령부가 1991년 공군으로 옮긴 때부터 지금까지 함께했다. 우리 공군 방공유도탄의 주력 미사일이 나이키에서 호크로, 다시 패트리어트와 천궁으로 발전하는 모습을 최일선에서 지켜봤다.

11번이나 지휘관을 역임했으며 합동참모본부와 공군본부, 방공유도탄사령부 등에서 주요 보직을 두루 거치며 9000여 방공포 병력의 최고 수장인 사령관까지 올랐다.

강원도 태백 출생인 김 소장은 어린 시절 공수부대 군인들이 헬기에서 뛰어내리며 훈련하는 모습을 보고 군인의 꿈을 키웠다. 꿈이 일찌감치 정해졌던 만큼 군생활도 남들보다 빨랐다.

그는 10대에 군 고등학교인 공군기술고등학교(10기)에 입학.1980년 졸업과 동시에 공군 하사로 임관했다.

그는 부대 지휘관의 꿈을 품고 1981년 제2사관학교 6기로 입학했다. 보급 특기 장교로 재임관한 김 소장은 전투병과를 지원, 1988년 대위 시절 공군 비행단에 배치된 방공포 부대 발칸 포대장을 했다. 그러면서 그는 당시 30여명 남짓으로 시작한 공군 방공포 병과 1세대로 전군 작업을 주도했다.

김 소장은 군 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때가 무등산 포대장 시절이라고 했다. 광주 무등산 정상에 위치한 이 곳은 공군 방공포대 중 가장 근무하기 힘든 곳으로 꼽힌다. 그는 육군에서 부대가 전군 한지 얼마안돼 포대 구성원 대다수가 육군 출신이었던 당시 포대 상황을 회상하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는 “처음 포대장으로 취임했는데 공군과는 문화가 달라 많이힘들었다”고 했다. 당시 겪었던 부사관들과의 갈등이 ‘부대관리=사람관리’라는 생각을 갖게 했다.

김 소장은 “유도탄 무기체계는 감시·통제·사격 장비가 하나가 돼야 하는데 이 중 어느 하나라도 제 기능을 발휘하지 않으면 미사일을 발사할 수 없다”면서 “장비를 운용하고 작전을 수행하는 부대원들의 의사소통과 단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김 소장은 가장 보람된 업무로는 패트리어트 전력화 사업과 천궁 프로젝트를 꼽았다. 패트리어트와 천궁은 지대공유도무기로 노후화 한 나이키 및 호크 미사일을 대체하고 있다. 특히 천궁은 탄도미사일 요격용으로도 개발되고 있어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KAMD)의 핵심 역할을 할 예정이다.

그는 “방공유도탄 부대는 북한의 공중 위협에 맞서기 때문에 모든 부대가 전방 부대이자 최초 결전 부대”라면서 “공군 방공유도탄 부대는 지속적인 장비 성능 개량과 24시간 감시체계로 대응태세를 유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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