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외투쟁 무용론]호기롭게 나갔다 빈손 회군…국민 눈총만 받았다

유태환 기자I 2019.05.23 05:00:00

민주·한국 막론하고 성과 없는 결과들 다분
민주, 朴정권 첫 장외투쟁서 유야무야 복귀
단기적 지지층 결집있지만 중도층 이탈 악수
"선진국, 장외투쟁 자체 없어…결국 자충수"

[이데일리 김정훈 기자]
[이데일리 유태환 기자] “우리도 많이 해봐서 알지만 오래 못 간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자유한국당의 장외투쟁에 대해 내놓은 충고다.

이명박·박근혜 보수 정권 9년 동안 제1야당으로서 숱하게 장외투쟁을 해봤지만 당초 목표를 관철하기가 쉽지 않았다는 얘기다. 한국당이 장외투쟁을 시작하면서 요구했던 공직선거법·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 패스트트랙(신속처리대상안건) 지정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민주당의 사과 및 철회 역시 애초부터 달성이 요원한 목표였다는 게 중론이다.

실제로 민주당과 한국당 모두 호기롭게 장외투쟁을 시작하면서 국회 밖으로 나갔지만, 빈손회군으로 망신만 당한 경우가 수두룩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관성적으로 뛰쳐나가는 장외투쟁 문화를 이제는 끝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박근혜·김성태 등 특수 사례서만 성공

한국당은 22일에도 패스트트랙 강행에 반발해 시작한 민생투쟁대장정 일정을 그대로 소화했다. 황교안 한국당 대표는 백팩을 둘러맨 모습으로 국회에서 민생투쟁대장정 버스 탑승을 하면서 “이 걸음걸음이 의미 있게 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한국당은 오는 25일 서울 광화문에서 진행하는 제6차 ‘문재인 STOP, 국민이 심판합니다’ 규탄대회를 마지막으로 민생투쟁대장정 일정을 마무리한다는 방침이다. 대여(對與) 협상 상황에 따라 국회 복귀 타이밍이 늦춰질 수는 있지만 사실상 회군 수순 밟기에 들어간 것 아니냐는 얘기도 들린다.

한국당은 앞서 문재인 정권 출범 이후 첫 장외투쟁부터 쓴맛을 봤다. 2017년 9월 당시 홍준표 대표는 김장겸 MBC사장 체포영장 발부에 대해 “방송장악”이라고 성토하면서 거리로 나갔지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국회로 돌아왔다.

한국당은 정기국회 대정부질문이 시작되던 날 의원총회를 통해 국회복귀를 공식화했지만 국회법 위반 논란에 휩싸이면서 망신만 당했다. 질문 의원과 순서를 전날까지 국회의장에게 통지하고 질문 48시간 전에 질문요지서를 정부에 보내야 한다는 국회법 규정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당에서도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립학교법 철회 투쟁과 김성태 전 원내대표의 ‘드루킹 댓글조작 사건 특별검사’ 도입을 요구한 단식투쟁 등 성공사례가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여권에서 이런 야당의 주장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던 특수한 사정이 있었다.

2005년말부터 2006년초까지 계속된 한나라당(한국당의 전신)의 사학법 철회 투쟁 성공은 △야당인 한나라당의 지지율이 집권여당인 열린우리당보다 높은 여론지형 △2006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민생법안 처리가 시급했던 여당 △여당의 4대 개혁안(국가보안법 폐지, 사립학교법·언론관계법 개정, 과거사 진상 규명법 제정)에 반발하는 보수층 결집 등의 배경이 있었다. 드루킹 특검 역시 △연루 의혹을 받는 김경수 경남지사(당시 민주당 의원)의 특검 수용 의사 피력 △민주당의 추경 처리 필요성 △수사를 해도 문제 될 게 없을 것이란 김경수 지사에 대한 여당 내 신뢰 등이 바탕이 됐다.

◇“비판 위한 비판, 중도층 흡수에 한계”

민주당도 야당 시절 툭하면 국회를 뛰쳐나가기 일쑤였지만 제대로 성과를 거둔 사례는 손으로 꼽힌다. 이명박 정권 당시에는 △2009년 ‘인터넷 멀티미디어 방송사업법’(미디어법) 처리 원천 무효 투쟁 △2010년 예산안 단독처리 반발 투쟁 △한미FTA(자유무역협정) 비준동의안 처리 반발 투쟁 등에 나섰지만 모두 성과가 없었다는 평가다.

그나마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투쟁은 대통령의 사과를 이끌어 내고 한미 간 추가협상이라는 성적표를 받아들었지만, 민주당의 투쟁 자체보다는 촛불집회 여론에 의한 성과였다는 분석이다.

박근혜 정권 출범 첫해인 2013년 국정원 대선 개입의혹 국정조사 증인채택에 대한 여야 이견으로 시작한 장외투쟁은 말 그대로 총체적 실패였다. 당시 한여름인 8월에 장외투쟁을 시작한 탓에 당내 불만이 높았고,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의 내란 음모 혐의 사건까지 터지면서 유야무야 복귀할 수밖에 없었다는 후문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이석기 의원 체포동의안이 국회로 넘어오면서 ‘빨갱이’ 소리를 들을까 봐 지레 겁을 먹고 원포인트 본회의에 동의했다”며 “이미 국회에 돌아왔는데 그 이후 장외투쟁이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고 회고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장외투쟁이 단기적으로는 지지층 결집 효과를 볼 수 있을지 모르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오히려 중도층 표심을 이탈하게 만드는 악수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김용철 부산대 교수는 “선진국에는 장외투쟁이란 것 자체가 없다”며 “우리나라만 여야 협상이 안 되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향이 있다”고 꼬집었다. 김 교수는 “비판을 위한 비판이 장외투쟁”이라며 “그러다 보니 지지층 결집 효과는 있지만 중도층이나 반대파를 흡수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했다.

박상병 인하대 초빙교수도 “내부적으로 똘똘 뭉치는 등 단기적으로는 효과가 있을 수 있다”면서도 “중장기적으로는 자충수”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한국당 장외투쟁도 극우·수구로 지지층을 소외시키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고 전했다.

`패스트트랙` 국회 몸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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